日 284조원 부양책...아베도, 경제도 살릴 수 있을까?

2019-12-12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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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4분기 경제지표 악화 속 초대형 재정부양책 발표

벚꽃스캔들 지지율 추락 막기 위한 정치적 계산 담긴 듯

'질'보다 '양'에 치우쳤다는 비판...실제 효과엔 의구심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초대형 재정 부양책을 다시 가동하기로 했다. 총 26조엔(약 284조원) 규모의 이례적인 돈풀기다.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 엔진을 재점화하고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하락) 탈출과 경제회생으로 가는 길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부양책 배경을 설명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4%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전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대만큼 성장률 견인 효과가 있을지를 두고 의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되레 지금까지 7년째 이어진 아베노믹스가 실패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지만 경제가 주저앉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돈을 풀 수밖에 없는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4분기 소비세 인상 직격탄...경제지표 빨간불

아베 정부는 대규모 국가재정을 풀어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갈등으로 인한 수출 부진, 잇따른 자연재해, 소비세 인상으로 인한 내수 위축에 시달리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복안이다. 전체 26조엔 규모의 부양책이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데, 이 가운데 약 절반인 13조2000억엔은 중앙 정부와 지방의 재정지출로 이뤄진다. 

일본 정부가 2016년 8월 이후 최대 규모의 재정정책을 꺼내든 것은 최근 돌아가는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다. 올해 일본 분기 성장률은 1분기(1~3월) 0.6%, 2분기 0.5%에서 3분기 0.4%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4분기 전망은 더 나쁘다. 10월부터 시작된 소비세 인상(8→10%)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블룸버그는 4분기 일본의 성장률이 -2.6%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내다봤다.

경제지표에서는 이미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10월 일본의 소매판매는 한해 전보다 7.1% 급감하면서 소비세 인상의 충격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미·중 무역전쟁과 더불어 한국과의 무역갈등 속에 일본의 수출액은 11개월 연속 감소행진을 이어갔다. 10월 산업생산도 한달 전보다 4.2%나 급감해, 2년 만에 최악의 위축세를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의 성장률 전망치를 세 차례 하향 조정해 0.8%로 제시하고 있다. 내년에는 성장률이 0.5%로 더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마셀 티엘리언트 캐피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우리가 다른 애널리스트들에 비해 다소 비관적이긴 하지만 세계 경제 전망이 밝지 않은 만큼 일본의 대외 수요는 계속 부진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2020년 일본 경제가 0.2% 위축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일본 월별 소매판매 추이 [그래픽=아주경제DB]


◆'벚꽃 스캔들 만회하라'...정치적 계산 담겼나

이번 부양 패키지는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지난달만 해도 여당에서 정부의 재정지출이 5조엔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실제로는 2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경제적 이유 외에도 '벚꽃 스캔들'로 인한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계산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벚꽃 스캔들은 나랏돈이 쓰이는 정부의 벚꽃보기 행사를 아베 총리가 개인 후원행사처럼 활용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최근에는 이 행사에 연예인과 유흥업소 여성까지 초청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일본 NHK의 최신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2%포인트 떨어진 45%에 머물렀다. 마이니치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42%, 월간 낙폭이 6%포인트에 달했다. 아베 총리로선 지지율 회복을 위해 대규모 지출 패키지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가 절실한 셈이다.

고바야시 신이치로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이 정도로 큰 규모의 경제적 자극이 필요하지는 않다. 5조엔 정도면 충분해 보인다"면서 "따라서 이번 부양책에는 지지율과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동기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지출 패키지가 본격 시행되는 내년에 중의원(하원) 해산과 총선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질'보다 '양'에 치우친 대책...부양효과 의구심  

아베 총리와 집권 여당의 정치적 노림수가 담기면서 이번 경제 대책의 중심이 질에서 양으로 옮겨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패키지에는 숫자를 부풀리기 위해 무엇이든 포함시킨 느낌이 있다"고 꼬집었다.

또 토목공사 위주의 이번 경제 대책이 경기 진작 효과보다 공공 부채 증식으로 인한 부작용만 낳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도이 다케로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이번 대책은 효과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던 1990년대의 경제 대책과 비슷하다는 인상"이라고 짚었다.

일례로 일본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혼슈섬과 시코쿠섬을 잇는 다리 15개를 짓는 데 2조8900억엔을 투입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리 이용도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통행료 수입이 다리 건설을 위해 얻은 부채의 이자 비용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다리들은 막대한 부채만 남긴 불필요한 인프라 프로젝트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또 일본의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감안할 때 계획대로 공공사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미야마에 고야 SMBC닛코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대책 중 공공 투자가 경기를 밀어올리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지 불투명하다. 건설업은 심각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공공 투자보다 일손 부족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소비세를 올렸지만 이번 대규모 지출로 인해 정부가 2025년으로 계획한 기초 재정수지 흑자 목표가 더 멀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지난해 재정수지 흑자 목표를 당초 2020년에서 2025년으로 미룬 바 있다. 

오카다 가쓰야 전 외무상은 "재정건전성을 간과하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는 것 같아서 무척 우려스럽다"면서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른 채 죽고 만다"라고 경고했다.

다만 이번 지출 계획은 일본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는 정부 재정지출 계획에 힘입어 일본 증시 상승세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과거 궤적은 대규모 부양책이 승인된 이후 1년 동안 증시가 평균 30% 올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일본 증시 닛케이지수는 올해 약 15% 상승했다.

◆부담 덜어낸 일본은행...당분간 정책동결 전망↑

일본은행엔 아베 정부의 이번 재정부양 패키지가 희소식이 될 전망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수출갈등으로 대외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비세 인상으로 인해 내수까지 고꾸라질 조짐이 뚜렷해지자 일본은행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추가 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높은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수년째 이어진 일본은행의 돈풀기가 자산시장을 왜곡하고 경기부양 효과에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일본은행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올해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글로벌 경제 둔화와 무역전쟁 불확실성을 이유로 일제히 통화부양 기조로 전환했지만 일본은행은 추가 부양책을 꺼내는 데 주저해온 이유다.

이번 지출 패키지 발표 후 JP모건은 일본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더 내릴 것이라던 예상을 거두고 정책 동결로 전망을 바꿨다. 내년 말까지 현행 통화정책을 동결할 것으로 본다. 바클레이스는 일본은행이 2022년 3월 말까지 현행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에게 이번 패키지는 정부가 중앙은행 대신 경제성장 대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세계적인 인식의 확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중앙은행의 선택지가 바닥났다면, 정부가 대신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미 세계에선 금융위기 후 각국 중앙은행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저성장과 저인플레이션 등 장기불황으로 가는 '일본화' 전조가 뚜렷하다. 

나오히코 바바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을 보완해 경제 정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면서 "일본의 부양 패키지는 일본 정부가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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