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세법 전쟁'이 시작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5일 조세소위원회를 열고 384개 세법개정안에 대한 심사에 돌입했다. 여야 의원들은 첫 날부터 '부자 증세'가 '핀셋 증세'인지 여부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정부·여당은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핀셋 증세'를 통해 저성장 양극화 극복, 일자리 재원 마련 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안은 과표 3억~5억원 40%, 5억원 초과 42%로 각각 2%p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법안이 원안대로 처리되면 5년 간 약 15조원의 세수가 더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이어졌다. 한국당은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고소득자 소득세율 인상안'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자유한국당은 이에 따라 조세소위원장인 추경호 한국당 의원이 과표 2억원 이하와 2억~200억원 구간의 세율을 2%p씩 낮추는 개정안을 당론 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종구 한국당 의원은 "소득세, 재산세, 부가세 외 4대 보험, 중앙정부, 지방정부 등 각종 권력을 활용해서 가져간 게 50%가 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 번 것의 50%를 권력기관이 가져가는 건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법인세가 됐든 소득세가 됐든 올려야 되는 논리가 없다. 이미 지난해 2% 올렸고, 세금이 엄청나게 걷히고 있는데 왜 더 걷자는 것이냐. 지금 상황에서 세율 올리면 조세회피 수단을 다들 개발해서 이리저리 피하고 기업은 공장 이전하지 않겠냐.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인 계산으로 세율을 올리자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같은당 엄용수 의원도 "정부에서 돈이 필요하면 증세를 하는 건데 당장 돈이 필요한 게 아니지 않나. 최대한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뤄서 내년에 증세해도 늦지 않다. 고소득자들이 능력이 되니까 더 부담해야 한다는 건 우리 과세체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거다. 이미 우리는 번 사람이 더 많이 내도록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조세저항이 없도록 단계적으로 올려야지 지난해 2% 올리고 또 올리는 건 핀셋 증세이자 형벌"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거센 반발에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돈 많은 사람이 미워서 하자는 게 아니다. 전반적으로 과세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전체적 소득세 수준을 높이는 과정에서 돈 있는 사람 먼저 모범을 보이도록 최상위 구간 과세를 강화한 뒤 근로 소득 납세를 확대해 일반 납세자도 함께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어 "핀셋 증세라는 말을 자꾸 쓰는데 증세라는 게 원래 다 핀셋 증세를 하는 것이다. 최근 5년 간 돈 많이 번 사람들이 있을 거다. 더 많이 벌었으니까 더 내시라는 게 증세의 기본 아니냐. 정확하게 어떻게 핀셋 증세를 할건지가 중요한 건데, 이걸 보편적으로 할 순 없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은 김 의원 말에 동의하면서도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 초고소득자에 대해 핀셋 증세를 하기보다 병행해야 하는 게 맞다. 초고소득자가 더 많이 부담하되, 대부분의 사람이 소득공제를 줄여가면서 자기가 부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부담하게끔 동시에 가야 한다"고 중립적 입장을 견지했다.
기재위 전문위원실에선 △근로의욕을 저해하고 소비 위축 및 경기 침체를 심화시켜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상보다 전반적으로 비과세·감면 정비, 금융소득 과세강화 등 과세기반 확충 노력이 선행될 필요 △최근 소득세법의 개정으로 지속해서 고소득자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 △지난 20년 간 OECD 국가의 대부분의 소득세제 개편은 세율을 인하하고 과세대상을 확대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는 검토의견을 내놨다.
반면 △저출산·고령화 대응과 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재정확보 수단 필요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조세 형평성을 제고 △OECD 국가들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소폭의 소득세율 인상이나 최고구간의 신설조치 등을 병행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조세소위는 소득세 관련 논의는 오는 17일 추가적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안 찬성 측인 여당 의원들이 김종민 의원을 제외하고 오후 회의에서 모두 자리에서 이석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경호 조세소위 위원장은 정부 측에 "찬반 관련한 의견에 대해서 추가로 자료를 준비하고 선택적 증세에 대한 논리를 분명히 해달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