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이어 국가 의전 서열 2위다. 다만 그 정치적 위상에 비해 실질적 권한은 많지 않아 통상 정계 은퇴를 앞둔 다선 의원들이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여야 극한 대립 속에서 쟁점 법안이 늘고 국회 공전 사태가 반복되면서 의장의 고유 권한 '안건 직권상정' 중요도는 커졌고, 국회의장은 '키 플레이어'가 됐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추미애 의원 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이 관심을 모았던 이유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다들 추 의원이 강성파라고 하지만, 우 의장은 조용한 행동파로 어떤 측면에선 여당이 상대하기 더 어려운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우 의장도 "정치적 중립은 몰가치가 아니다"라며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고 국민 권리를 향상시켜 나갈 때 가치 있는 일"이라면서 '행동하는 국회의장'을 내세운다.
우 의장은 1957년 서울에서 출생한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독립유공자 김한 선생의 외손으로 현재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 재학시절인 1981년 전두환 전 대통령 반대시위를 주도했다가 제적·투옥됐다. 198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평화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고(故) 김근태 의원을 따르는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에서 활동했다.
1995년 제1회 전국지방선거 서울 노원구 제3선거구에서 서울특별시의원에 당선됐고, 2004년 17대 국회의원 총선 서울 노원을에 출마해 승리했다. '뉴타운 광풍'에 밀려 18대에선 고배를 마셨지만 19대부터 21대까지 내리 당선됐고 지역구가 재편된 22대 총선에선 노원갑에서 5선 고지에 올랐다.
당직자와 국회의원 보좌관, 기초의원 등을 거치며 탄탄한 정치적 내공을 쌓았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 지방의원 출신 국회의장이다.
현장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 민주당의 히트상품 '을지로 위원회(을 지키기 민생실천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며 '남양유업 갑질 사태' 해결 등에 앞장섰다. 21대 국회에서는 4선 중진이었음에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반대 단식농성을 했고, 국회의장이 된 지금도 매주 일요일 지역구에서 주민들의 현장민원을 청취하고 있다.
우 의장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첫 여당 원내대표로 '박근혜 탄핵' 혼란 속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정부의 안정적인 출범을 뒷받침하며 1년간 여야 협상을 주도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정부 입장만 추종한 것은 아니었다. 2018년 5월 당시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을 때 공개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