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빅스텝? 물가는 잡아도…경제불안 등 리스크 첩첩산중

2022-07-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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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ECB)이 20일(이하 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5%(p)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이 ECB가 빅스텝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유로화의 가치는 달러대비 반등했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ECB가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인상폭이 0.25%포인트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보다 강한 긴축 정책이 시행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ECB의 정책 선회로 유럽 금융시장과 경제의 변동성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등과 같이 국채 금리가 높은 국가들의 경제불안 가중은 유로존은 물론 세계 경제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파른 물가 버티지 못한 ECB
이번 통화정책 회의에서 ECB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을 이미 예고한 바 있다. 물가상승률이 이미 두자릿수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더 유지하기는 힘들어진 탓이다.
로이터는 "긴축적 통화정책이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키거나 심지어 붕괴시킨다고 할 지라도, 유럽의 물가는 2%(ECB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경제 악화탓에)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는 아직 유럽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대상이다"라고 19일 전했다. 경제가 급격한 침체에 빠져들더라도 물가를 낮추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설명이다. 다만 ECB의 긴축의 속도를 둘러싸고는 여전히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먼저 잡아야 한다는 주장과 경기침체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설문조사에 응한 이코노미스트들은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전망했지만, 실제 필요한 인상폭은 0.5%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금리를 제 때 올리지 않을 경우 유로화의 하락이 가속화하며,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거세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ECB가 이번에 추가 인상의 신호를 보낼 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9월 통화정책결정 회의에서 0.5%포인트 추가 인상을 이미 시사한 상황에서, 연말까지 또다른 인상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BNP파리바는 투자노트에서 "9월에 0.5%포인트 인상이 이뤄진 뒤에도 추가 인상을 위한 여지는 남아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이어 10월에도 0.5%포인트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은 현재 9월까지 거의 1%포인트, 연말까지 1.70%포인트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0.5%포인트 인상이 연말까지 남은 4차례의 회의에서 모두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하면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 사이의 딜레마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사이에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유럽의 구매력은 고갈됐다. 특히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우려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 경제국 성장에 크게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난방으로 인한 가스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경기침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금리 인상이 겹치면 경제에 가해지는 고통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ECB는 물가통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JP모건 그레그 푸제시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가스 공급의 중단은 경제성장에도 타격을 주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도 자극하면서 ECB를 당장 성장에는 덜 민감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ECB의 궁극적인 임무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것이고, 물가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가격 상승 문제는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 유럽의 노동 시장에서도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고 이에 따른 물가상승도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앞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막기 위해 경제성장의 타격을 감내할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로존 붕괴 방지도 또다른 난제 
다만 ECB의 앞에는 유로존 유지라는 또다른 난제가 놓여있다.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유로존의 금융 분열(fragmentation)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6월 ECB가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부채가 많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이에 ECB는 긴급회의를 소집해 팬데믹긴급매입프로그램(PEPP) 포트폴리오에서 만기가 도래한 국채를 재투자하는 부문에 있어 유연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융 분열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19개 회원국들로 묶여있는 유로존에서는 한 회원국의 재정위기가 다른 곳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 결국 ECB는 기준금리를 올리면서도 부채가 많은 국가들의 국채를 사들이는 완화정책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부채가 많은 국가 중 하나인 이탈리아는 정치 불안까지 가중됐다.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이탈리아 핵심 정당의 지지를 잃으면서 조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FT는 "유로존 최대 부채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경기 침체와 정치 불안도 ECB의 행보에 고민을 더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유로존 은행들은 이미 긴축발 불황에 대비하고 나섰다. FT는 "위험선호가 줄고 대출 비용이 증가하면서 은행들은 이미 이탈리아, 프랑스 등과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기업 및 가계 대출 공급을 줄이고 있다"고 ECB의 분기 설문조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어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로 기업들의 대출 및 투자융자 수요는 4월부터 3개월 연속 감소했다"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현재 투자를 더욱 미룰 것이라는 신호가 나오고 있으며, 3분기에는 대출이 더욱 줄어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로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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