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살상되었다. 이에 세계는 러시아 규탄에 이어 이 사태가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으로 번질까 반전 평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더욱이 주요 농공산물의 거대 생산지인 두 나라의 전쟁으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곡물 수급에 초비상이 걸렸다. 세계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 식량보호주의를 강화하며 자기 곳간 지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계 유일무이 분단국이며 자원 빈국, 세계 7위 곡물수입국인 우리나라는 국가안보에 식량안보까지 설상가상, 대안 마련과 선택의 갈림길에 봉착했다.
상해의거,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꾼 쾌거
당시 조선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열강들은 한반도를 일본 고유영토로 승인, 지도에 일본과 한반도를 같은 색으로 표현했다. 오천 년 우리 역사가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우리나라가 독립하리라고는 세계 어느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는 우리 역사를 새로 썼다.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활, 독립운동의 총본산으로 독립할 때까지 27년간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장제스 총통은 “중국 백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크게 감동, 이후 임시정부를 인정 물심양면 지원했다.
또한 장 총통은 1943년 11월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창해 끝내 독립 확약을 받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의 80%가 식민 피지배국가였다. 카이로회담에서 유일하게 독립이 보장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이렇듯 상해의거는 한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 투혼과 결기를 세계만방에 알려 끝내 조국광복의 물꼬를 튼 기념비적 사건이다. 윤봉길 의사 그때 나이 불과 23세 열혈청년. 상해의거의 폭발음은 일제 패망의 전주곡이 되었고, 윤 의사는 세계의 영웅으로 우뚝 섰다.
농촌은 인류의 생명창고, 식량안보 제2의 독립운동으로
매헌 윤봉길 의사는 재향 시절 선구적 농민운동가였다. 1927년 저술한 <농민독본>에서 “농촌은 인류의 생명창고”라고 기술했다. “흙이 죽으면 자연이 죽고 인간정신도 황폐해져 인류의 미래도 없다”고 90여 년 전 이미 식량의 중요성을 역설할 만큼 예지가 빛났다.
현재 우리나라 식량자급률(2019년 기준)은 45.8%로 OECD 국가 중 꼴찌이며, 더구나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1%를 밑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차치하더라도 기후 온난화로 세계 곡물 생산량 감소, 농업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산업화로 이농 현상 증가, 세계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식량이 곧 무기’가 되는 식량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일찍이 ‘생명 창고가 거덜 나면 우리 미래가 없다’고 매헌이 주창했듯이 농업은 모든 재화의 원료를 양산하는 생명 산업으로 우리 삶의 원천이며, 생존의 보루다. 이렇듯 식량안보 즉, 식량의 안정적 확보는 오늘날 시대정신으로 급부상했다.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식량으로 굶주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끔찍하다. 우리의 생명 창고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에 새 정부는 식량 자급을 안보 차원으로 인식, 최우선 국책사업 아니 제2의 독립운동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 대안으로 전문가의 지혜를 모아 우리 농촌의 발전을 꾀하고, 해외에 식량기지 확보, 식량 공급처 다변화 및 장기계약, 곡물 생산국에 기술제공과 개발 참여 등을 통해 식량 수입 우선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 순간에도 우크나이나 사태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물가의 고공 행진으로 세계는 아우성이다. 더욱이 북한은 국제정세를 적극 이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핵실험 재개 조짐마저 보인다.
‘먼 산 불 보듯’ 할 때가 아니다. 이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 새 정부는 국가안보와 식량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되, 지난 정권들의 행태를 반면교사 삼아 국민의 삶이 편안한 통 큰 정치로 조국 번영에 매진하길 바란다.
오롯이 조국 수호와 번영을 위해 투혼을 사르고, 예지에 빛난 선열의 얼은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적 과업이다. 이런 선열 정신을 새겨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위대한 정부 탄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