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13일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하는 이 부회장은 당분간은 해외 출장 등 현장 경영이 여의치 않다. 이 부회장도 출소 직후에는 당분간 자택에 머무르며 건강을 추스르는 데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수감 기간 동안 급성 충수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고, 체중도 10㎏이나 빠지는 등 기존 체력을 회복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간 미뤄왔던 미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건설 등 삼성전자의 주요 투자 현안은 옥중 경영을 할 때보다는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해외 출장·현장 경영 어려운 ‘가석방 신세’…남은 사법 리스크도 부담
이 부회장은 출소 이후에도 재판정을 계속 오가야 하는 신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계열사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고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도 기소돼 있다. 또다시 사법 리스크가 커져 수감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처럼 운신에 여러 제약을 받는 터라 이 부회장은 최대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되, 중요한 투자 결정에는 최종 사인을 하는 형태로 경영 전반을 조용히 챙길 것으로 보인다.
◆현금 100조 보유한 삼성전자, 반도체 대형 M&A 빨라질 듯
특히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도 발 빠른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는 올 들어 더 벌어졌고, 반도체 종가인 미국 인텔도 파운드리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TSMC는 내년 7월 세계 최초로 3nm(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반도체 양산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2월 대만에서 3nm 공정 생산라인 가동을 시작해 7월부터 인텔이 주문한 CPU·GPU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2019년 공언한 ‘반도체 비전 2030’ 투자 계획이 속도를 내려면, 오는 2030년까지 계획한 투자는 보다 더 큰 규모로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더구나 이 부회장의 이번 가석방은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삼성전자가 ‘K-반도체’ 주도 기업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정부와 재계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삼성전자로선 ‘큰 거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형 투자를 위한 실탄은 충분히 채워둔 상태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기준 약 104조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1분기와 2분기에도 각각 9조3000억원, 12조5000억원 등 상반기에만 약 22조원 가까이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최대 관심사는 대형 M&A의 성사 여부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3년 내 의미 있는 인수합병을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2월 자동차 전장업체인 하만을 인수한 이후 4년여째 대형 M&A 실적이 전무하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삼성전자가 가장 눈독 들이는 기업으로 ‘네덜란드 NXP’를 꼽는다. NXP는 독일의 인피니온에 이은 차량용 반도체 2위의 공급 업체로, 차량용 반도체 중에서도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인포테인먼트,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의 기술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AI △5세대(5G) 통신 △바이오 △전장 부품 등을 '4대 미래 성장사업'으로 꼽고 과감한 투자를 해왔다. NXP를 인수하면 삼성으로선 차량용 반도체와 동시에 전장 기술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다만 높은 인수가격이 부담스럽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강타한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과 맞물려 NXP의 몸값은 계속 오르는 분위기다. 2018년 미국 퀄컴이 440억 달러(약 50조원)에 인수를 하려다 무산됐기에, 현재 인수가격은 60조~7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