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보다 5배 많은 가족살해...한국 '집안살인' 많은 5가지 이유 있었다

2018-01-0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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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가족해체로 이기주의 극성 -보험금 황금만능-이혼 새 가족과 전 배우자 자녀 관련 불화-가부장적 폭력 잔재-이웃 무관심

지난해 12월 27일 괴한은 둔기를 들고 충주에 있는 집에 침입해 두 노인을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내리쳤다. 숨이 끊긴 것을 확인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충주경찰서는 괴한의 정체는 두 노인의 아들인 김모씨였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아버지가 소유한 땅 1만평을 가지기 위해 벌인 존속살해였다.

지난달 8일 전주 아중지구대에 한 여성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이 여성은 오열하며 5살 여자아이 고준희양을 찾는 아동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실종 20일만에 신고를 한 것부터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실종 신고한 여성은 준희양의 친부 고모(36)씨의 내연녀 이모(35)씨였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4월 27일 준희양을 야산에 유기했다. 이혼소송 중인 준희양 생모의 양육비 문제를 피하기 위한 비속살해였다.

◆가족살해는 매년 증가 추세

한국 사회에서 가족살해(존속살해와 비속살해 총합)는 전체 살인사건의 5%를 차지한다. 반면 영국은 1%, 총기 소유가 합법인 미국은 2%다. 한국이 미국보단 2.5배, 영국보단 5배 높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조사관인 정성국 박사 지난 2014년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지금도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주고 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발생한 살인사건 중 가족살해만 분석한 것이다

2006년부터 7년 3개월간 한국에서 발생한 존속살해는 381건, 비손살해는 230건이었다. 연평균 기준 존속살해는 50~60건, 비속살해는 30~40건 정도 발생했으며 매년 증가 패턴을 보였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크로노스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자신을 몰아낸다는 저주를 받고선 자신의 아이들이 태어나면 먹어 치웠다.[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de Goya,1746-1828)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2017년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존속범죄 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2013년부터 2017년 7월까지 존속살해 범죄는 252건. 한달 평균 4.5건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의원은 가족살해 예방책으로 "현행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된 예방교육, 긴급전화센터 및 상담소와 보호시설 등의 이용을 보다 용의하게 해 충분한 법적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하며 무엇보다 가족윤리를 되찾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3년 이후 존속대상범죄 유형별 현황[자료=이재정 의원실]


◆유독 우리나라에서 가족살해가 번번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1.급속한 가족해체로 이기주의 극성
한국 경제는 빠른 근대화를 경험했다. 근대화는 농촌 인력을 도시 노동자로 흡수하고 대도시를 만들었다. 농촌을 벗어난 사람에게 농경사회 향수를 불러왔다. 농경사회는 끈끈하고 신성한 무엇으로 이어진 절대적 가치 '가족'의 총합이다.

한국 사회가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MBC에서 방영한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다. 그뿐 아니라 최근 한국 드라마는 가족이 중요한 존재로 나온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본격적 가족 해체를 불러왔지만, 미디어는 역설적으로 가족의 중요성을 알렸다. 사회는 화려하게 포장하는 곳에 결핍이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의 가족이 그렇다. 명확한 실체 없이 상상적 근거로 가족 관계를 유지하다가 경제적이나 정신적 어려움이 찾아오면 상상으로만 유지된 가족 관계가 끊어진다.

2.보험금 황금만능
지난 2015년 3월 국에 농약을 조금씩 타 전 남편과 현 남편, 시어머니 총 3명을 독극물로 살해한 엽기적인 가족살해 사건이 방송을 탔다. 범인은 다름 아닌 며느리. 범인 동기는 보험금 수령이었다. 보험금 혜택을 받은 여성은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가족살해를 이어갔다. 범행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친딸과 전 남편의 시어머니도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할 뻔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유산이나 부모 명의로 보험을 들어놓고, 그것을 부당하게 수령하기 위해서 살해한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거나, 장기간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정신적인 취약이 발생한다. 그것이 결국 가족에게 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밝혔다.

가족살해 비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경제적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결국 경제적 상황이 좋을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랜 시간 동안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하다 보니까, 부모는 부모대로 경제적 문제를 껴안고 있는데, 자녀의 미취업이 가족에게 이런 극단적 선택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3.이혼 새 가족과 전 배우자 자녀 관련 불화
최근 발생한 준희양 유기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한국의 비손살해는 이혼 후 새 출발에 자녀가 걸림돌이 되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자녀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자녀를 독립된 개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아서이기도 한다.

이 교수는 가족살해 비율이 외국보다 높은 이유와 관련해서는 "이혼하거나 자녀가 성인이 되면 책임을 안 지는 외국에서는 찾기 힘든 사례로 배우자나 자식의 생명권까지 부모 자신이 결정한다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4. 가부장적 폭력 잔재
한국 가정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는 엄격한 자녀 훈육이 옳은 것처럼 포장했지만, 도가 지나쳐 아동학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가부장적 사고가 심해지면 가족 전체가 폭력에 둔화돼 폭력 가해자에게 더욱 의지하는 경향을 보여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자녀가 장성해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족들이 많이 있다. 부모가 아이들을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는, 좋게 이야기하면 책임감이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가부장적 사고가 존재하는 것"이라며 "유독 우리나라에서 가족살인사건을 증가시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보고서는 존속살해 가해자가 자살하는 경우는 6%에 불과하지만 비속살해의 경우 자식 살해 후 가해자인 부모가 자살하는 경우가 44.4%로 월등히 높았다. 이런 이유로 언론도 비속살해 보도를 '동반 자살'로 보도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는 대중이 비속살해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세우기보다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 등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을 거로 추측해 동정심이 생기는 역효과를 키웠다.

5.이웃 무관심
가족살해는 사건 발생 전 많은 신호를 보내는 범죄이지만, 가부장적 사고와 무관심이 겹쳐지면서 가족살해라는 비극을 더욱 키우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부모가 자녀를 상대로 폭력을 가해도 주변 사람은 나름의 훈육방식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있다. 이런 무관심은 이웃뿐만 아니라 관련 기관도 마찬가지이며, 무관심이 사건을 키우고 있다.

정 박사는 "가족살해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신호를 보낸다. 이런 신호들은 여러 기관에서 접수를 한다. 가령 가정폭력으로 경찰서나 지구대에서 출동해보면 '이거 가정 내 폭력이니까 크게 다친 사람도 없다. 돌아가시라'고 하면 일회성으로 끝나게 된다."면서 "학교나 어린이집, 병원 응급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각 기관에서 접수되는 신호들이 지금 일회성으로 다 소모되고 있기 때문에 컨트롤타워 할 수 있는 그런 기관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가정폭력은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를 해서 반복 접수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사회복지기관, 변호사 등 민관이 합동으로 조사를 하고 이걸 바탕으로 해서 격리할 사람은 격리하고 보호해야 할 사람은 보호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사진=iclickart]


◆가족살해 표면적 원인 1위는 가정불화 이지만...

한편,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보고서는 가족살해의 우선적 동기는 경제문제가 아닌 가정불화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존속살해 동기는 가정불화(49.3%), 정신질환(34.1%), 경제문제(15.2%) 순이며, 비속살해 동기는 가정불화(44.6%), 경제문제(27%), 정신질환(23.9%) 순이다. 존속살해와 비손살해 모두 살해 동기가 가정불화이지만, 표면적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가정불화는 가족관계 내에 잠재된 갈등이 취약한 환경에 발동되는 기폭제일 가능성이 높다.

캐슬린 하이드(Kathleen Heide)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 범죄학 교수는 청소년의 존속살해 유형을 "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당한 경우로 학대를 끝내기 위해 살해하는 경우이며, 심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경제 문제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경우"라며 세 가지로 정리했다.

정 박사도 "존속살해와 비손살해 두 가지 살인사건들은 서로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선을 한 번 꼬아서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없다."면서 "가정폭력이라는 것이 자녀학대로 이어지고 이것이 자녀살해로 가기도 한다. 또 이러한 불우한 가정 속에서 자란 자녀들이 정신질환의 문제가 오거나 가정폭력으로 대물림되는 그런 사건으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는 가족 간의 소통, 이런 독립적인 인격체로서의 양육과 의식전환이 필요하다."며 폭력의 재생산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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