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칼럼]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2017-08-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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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권오용]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명칭이 허락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중부고속도로 남이천IC를 나오면 바로 정면에 보인다. 민주화운동의 큰 뜻만큼 큼직한 정문이 있다. 항상 열려있는 개방식이다. 민주화운동의 혜택을 차별 없이 골고루 모든 국민이 누리게 하라는 뜻 일거다.
빨리 듯이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빨아 들였을까. 산업화는 보이는 것이다. 공장이 솟고, 도로가 놓여지고, 모두가 자랑스러이 그 성과를 얘기한다. 그래서 볼 것도 많고 기록도 많다. 기념관을 꾸리기가 쉽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은 그렇지 못하다. 민주화는 정신혁명이다. 도로에 나와 목청껏 소리쳤어도 도로는 다음날이면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뿌려진 유인물은 수거되어 바로 소각되어 버린다.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기념관을 꾸리기가 쉽지 않다.
애를 많이 쓴 흔적이 보였다. 민주열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한국 민주주의라는 열매로 형상화했다. 민주나무 아래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통사를 정리하고 역사의 편린을 찾아 학습하고 체험하게 하고 있다. 야외에는 만장의 숲을 재현해 깃발광장을 만들었고 역사의 문에는 풍경을 담아 민주주의가 언제나 깨어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수(水)공원인 평등의 못은 특권을 배격하고 누구나 평등하다는 뜻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입장료는 물론 없다.
그러나 좀 더 개선됐으면 한다. 우선 관람객이 너무 적다. 1시간 동안의 관람시간 동안 몇 분의 어르신들이 관람객들의 전부였다. 항상 이러면 곤란하다. 좋은 풍광과 맑은 공기, 쾌적한 기념관 내∙외부의 환경은 민주화운동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들러 즐길만하다.
기념관 안에서는 조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은 시끄럽다. 목청껏 떠들게 하는 것은 어떤가. 서울광장을 조성해 놓고 혼자든 여럿이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어떤가. 시끄럽다고 눈을 흘길 일인가. 음식물은 반입하거나 들 수 없다고 했다. 이러면 아이들은 소풍을 올 수가 없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은 모두 그 안에 식당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의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미슐랭 스타 3개의 식당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구내에 식당을 두는 것은 어떤가. 이천이면 맛있는 것도 많다. 이천의 맛 집을 유치해 보자.
공간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민주화운동 기념관은 체험이 부족하다. 민주화운동을 복합브랜드로 전환시켜 보면 가슴 두근거림을 체험케 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권력의 총칼 앞에 맨주먹만으로 길 위에 섰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공간마다, 상징물마다 가슴 두근거림을 체험케 해 보자. 기술이나 디자인이 이걸 해결 해 줄 수 있다. 자료가 없어, 유물이 없어서 이 체험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화 운동은 정신 혁명이기 때문에 문헌이 없고, 영상이 없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민주화 기념공원에서 체험한 어린 시절의 가슴 두근거림은 우리 미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민주화운동은 불의에 대한 저항의 정신이다. 그래서 우리가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높이 기린다. 그런데 역사는 상대적이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장 청문회가 있었다. 새로이 지명된 소장 후보자가 어느 민주화운동 유공자를 만나 사과를 했다. 광주항쟁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잘 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자. 그 유공자는 버스로 시위진압에 동원된 경찰병력에 돌진해 4명의 경찰을 사망케 했다. 경찰관 4명이 순직한 것이다. 역사는 화해를 원한다. 순직한 4분의 경찰은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다. 당연히 이 분들에게도 사과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화운동은 제로섬의 게임이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동의대 사태로 희생된 7명의 경찰도 뒤집어 보면 민주화 유공자들이다. 이들이 순직하지 않았으면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은 아무 조명도 받지 못한 채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버스 운전자와 4명의 순직경찰이 같이 서 있으면 어떤가. 화염병을 던진 동의대생과 7명의 순직 경찰이 악수하고 포옹하는 모습은 어떤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행한 헌신을 체험할 때 우리는 과격한 폭력혁명이 아닌 위대한 정신혁명으로 민주화운동을 승화시킬 수 있다. 이걸 가능케 하는 것이 디자인이고 기술이다. 민주화 기념공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슴 뭉클한 체험이 될 수 있다. 추모하면서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민주화운동을 영어로 「Democratization Movement」로 표기했다.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People Power」로 번역하면 어떨까. People Power는 우리나라만 아니라 세계에서 통용되는 용어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직후 각국에 특사를 보내면서 새 정부가 People Power로 새로 출범한 정부라고 설명해 달라고 했다. 프랑스 혁명도, 자스민 혁명도, 천안문 시위도, 오렌지 혁명도 모두 시민의 힘으로 이룬 세계사적 기념물이다. 동학 혁명도, 3.1 운동도 자유와 정의를 되찾기 위한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의 결정체다. 영어 명칭은 이름 자체로 보편성과 역사성을 공유할 수 있게 표기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부디 민주화 기념공원이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정신혁명의 체험장이자 미래의 공간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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