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의식 있는 주당의 격언…"음주는 양보다 질이 중요해"

2017-0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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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술꾼 |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 오브 아프리카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생각하는 술꾼' 벤 맥팔랜드 외 지음 | 정미나 옮김 | 시그마북스 펴냄
 

'생각하는 술꾼' [사진=시그마북스 제공]


"위스키를 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생전에 이 같이 말하며 술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또 스콧 피츠제럴드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애주가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학을 하는 이들, 더 나아가 예술가들에게 술은 작품활동에 영감 또는 활력을 주는 기제로 작용했지만 우리가 익히 알듯이 술은 엄청난 사회적 피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수차례 증명됐듯이 문화와 사회에 따라 술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알코올 자체보다는 사회적 기대치에 따라 술에 대한 태도가 좌우되는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술과 술자리는 좋든 싫든 사회생활에 수반되는 요소로 각인돼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술과 술자리가 고역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술은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거나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술을 얼마큼 알고 있을까?

'학구적'인 자세로 음주에 임해온 두 저자는 30여 년에 걸쳐 주류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갈고 닦은 술 지식을 풀어낸다.

이 책에는 맥주, 와인, 위스키, 보드카 등 15가지 이상의 술을 각 장별로 할애해 놀라운 일화, 역사 속 엽기적 실화, 전문가의 추천, 술 이면에 얽혀있는 사람들의 발자취 등이 인상적인 삽화와 함께 제시된다. 

이 책은 단순한 술 지식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테킬라의 핵심인 아가베의 다채로운 세계를 비롯해 미국 와일드 웨스트 시절의 설룬 문화, 황량하지만 매혹적인 위스키 산지 헤브리디스 제도, 런던 거리를 피폐화시킨 진 광풍, 프랑스 거리를 무법지대로 물들인 압생트 등은 마치 흥미로운 '술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티니를 사랑한 험프리 보가트, 보드카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던 표트르 대제, 아즈텍 족이 숭배하던 여신 마야우엘, 압생트에 중독된 빈센트 반고흐 등 우리가 알 만한 유명한 '술꾼'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당들의 재미있고 기분 좋은 이야기들 속에 담긴 '삶의 해답'이다. 그것은 우리가 술에 걸맞은 존중을 보이면서 믿고 마시면, 술도 그 보답으로 우리를 존중해줄 것이라는 믿음과 비슷하다.

저자들은 이 시대의 술꾼들에게 이렇게 고한다. "음주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의식 있는 주당이 되고 싶다면 꼭 새겨야 할 말이다. 

224쪽 | 2만원


◆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사진=한겨레출판 제공]


"자유로운 영혼. 이거 멋지지 않은가. 위정자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자들을 무서워한다. 그들이 무서워할 젊은 영혼이 많은 것, 그게 정상적인 국가이다. 그러니 좆도, 산다이(축제, 거문도 방언) 하면서 놀자. 놀아도 내일은 또 오더라."

'바다의 표정과 기분을 볼 수 있는' 소설가 한창훈이 1년여간 연재한 에세이를 책으로 엮어 내놨다.

그는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바다를 바라보고, 노을이 지면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그에게 바다는 통째로 화장실이기도 하고, 할머니의 삶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여름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산다이'이며,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면서 가을 바다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가장 아름다운 바다다. 겨울 바다는 존재에 대해 끙끙 앓는 시공간이다.

그런데 봄 바다는 안타깝게도 언젠가부터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바다가 됐다. 그는 "미워해야 할 대상은 바다가 아니라 그런 사고를 내고 먼저 도망가버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뒷수습이라고 한, 아직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피해자들을 이간질하는 것도 모자라 악랄하게 공격하고 있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 속의 어떤 사람들"이라고 읊조린다.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섬사람들과 작가 자신이 겪은 인생의 편린들을 기록해온 그는 불안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쫓기듯 놀지 말고, 쪽방에 갇혀 시험 준비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맑은 날씨를 즐기며 행복해지자고, 느닷없이 어울리자고,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덤비니까 청춘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담긴 스물여덟 꼭지의 글은 펄떡이는 생선처럼 살갗에 생생하게 내려 앉는다. 고담준론을 늘어놓는 철학자들의 어려운 말이 아니라, 거칠지만 우직한 파도처럼, 가난해도 온전하게 살려고 애쓰는 '자유로움'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늘 메고 다니는 흙색 바랑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는 에세이다. 

264쪽 | 1만3000원


◆ '오브 아프리카' 월레 소잉카 지음 | 왕은철 옮김 | 삼천리 펴냄
 

'오브 아프리카' [사진=삼천리 제공]


1986년 아프리카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월레 소잉카가 '검은 대륙'에 대한 전 세계인의 뿌리 깊은 편견과 위선, 대륙을 인권 사각지대로 내모는 아프리카 종교·지도자들에 정면으로 맞섰다.  

소잉카는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호메로스, 헤로도투스, 셰익스피어를 단호하게 비판한다. 모험가 오디세우스를 탄생시킨 호메로스, 아프리카 내륙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헤로도토스, 오셀로라는 허구의 인물을 그린 셰익스피어는 아프리카와 대륙의 사람들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왜곡함으로써 그들의 시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세계인들에게 허구화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쟁탈전은 민족·언어·문화와 관계없이 '직선'을 그어 그것을 국경으로 삼았다. 아프리카를 누비이불처럼 만든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다시 아프리카를 갈라놓았다. 소말리아, 르완다, 수단의 다르푸르 내전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으며, 외세와 결탁한 군부독재, 기독교와 이슬람, 자원과 권력을 둘러싼 종족간의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소잉카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일제의 위안부 운영 등 인류의 본성, 휴머니즘에 치명타를 가한 20세기의 사건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의 제노사이드, 디아스포라 등의 문제도 함께 알고 기억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제국주의 광풍이 지나간 이후에도 과거의 외부세력보다 더 극악무도한 폭압을 행사한 아프리카인들도 소잉카의 화살을 비켜갈 순 없다.

그는 "아프리카의 허구적인 과거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 폭력적인 정권 탈취와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일당독재가 합리화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아프리카의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지껄인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을 근대 세계의 주된 흐름에 합류시키려면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통상 사절이 떠받드는 복음이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과 가식을 조금 아프지만, 제대로 떨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272쪽 |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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