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추수감사절? 이혼절!

2015-09-24 14:55
  • 글자크기 설정

김동열(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추석 연휴가 곧 시작된다. 이번 추석은 처음으로 대체휴일제가 적용되어 토요일부터 4일 연휴다. 우리의 추석 같은 명절이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다. 11월 마지막 목요일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이고 금, 토, 일까지 4일 연휴다. 추수감사절 연휴를 이용하여 미국에서도 각지에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이고, 칠면조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보낸다. 역사적으로 이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박해받던 청교도들이 미국에 건너가 정착했던 매사추세츠주(州) 일대에서 1621년부터 시작되었다. 승객과 선원 130여명을 태운 메이플라워호(Mayflower)가 1620년 9월 영국 남서부 플리머스를 떠나 12월 신대륙 아메리카 식민지, 현재의 매사추세츠 주에 도착했는데, 102명의 청교도 가운데 절반이 혹독한 겨울 추위와 병으로 얼어 죽었다. 이듬해에는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를 심어 처음 수확할 수 있었고, 1621년 11월 말에 첫 수확의 감격스러움(thanksgiving)을 기념하였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본래 청교도만의 축제였는데, 링컨대통령이 1863년 추수감사절을 공휴일로 지정한 이후부터 모든 미국인들의 축제로 발전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세계 각지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모든 민족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들은 이웃사람들과 함께 칠면조와 음식을 나누며 서로 친교하고 통합한다.

옛날의 추석은 가족과 이웃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친교하며 통합했던 큰 명절이었다. 지금의 추석, 즉 ‘한가위’는 신라시대의 ‘가배’에서 유래했다. 신라를 구성하는 여섯 개 지역에서 대표로 선발된 여자들이 모여서 한 달 동안 베를 짜는 길쌈을 하고 음력8월15일에 길쌈을 가장 못한 지역의 여자들이 벌칙으로 음식과 술을 마련하여 함께 놀았던 것이 ‘가배’다. 이 ‘가배’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한가위, 중추절, 추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과 과일에 술을 곁들여 먹으면서, 씨름, 제기차기, 강강술래 등의 놀이를 하고, 가족, 친지, 이웃, 동네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니, 1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러한가? 아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던 것은 옛말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추수감사절처럼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프고 불행이 시작된다. 추석 연휴를 전후하여 이혼율이 급격히 올라간다. 요즘 우리의 추석은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이혼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일단 교통 혼잡과 장거리 여행도 ‘명절스트레스’의 중요한 요인이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전 국민의 50%가 몰려 있다. 아무리 3일에서 5일에 이르는 연휴라고 해도, 4천만명에 달하는 추석 이동인구가 본인 또는 부모님의 고향으로 일시에 흩어지고 일시에 모여드니 교통체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은 명절 준비에 따른 스트레스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준비하고 함께 즐기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명절 준비에 있어서 아직도 남녀 간에, 형제간에, 며느리 간에 차별과 앙금이 남아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3가지를 나눠야 한다. 먼저 교통 나누기다. 교통문제는 추석 연휴에 한꺼번에 사람들이 이동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가족들이 모이고 성묘를 하는 시기를 분산하는 수밖에 없다. 설, 추석 이외에 한식, 동지, 대보름도 좋다. 여름휴가나 겨울휴가를 이용하여 만나고 성묘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교통이 몰리는 문제 그로인한 스트레스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고통 나누기다. 음식을 준비하고 선물이나 용돈을 드리는 것 그로 인한 고통과 스트레스 역시 나눠야 한다. 미리 역할을 나누고 부담을 나누면 그로 인한 마찰이나 갈등, 고통도 나눠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복 나누기다. 서로 만나서 음식과 술 먹고, 고스톱치고 헤어지는 것도 좋지만 너무 남성 중심적이고 비생산적이다. 예를 들면, 윷놀이처럼 남녀노소가 함께 시어머니 며느리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놀이는 어떤가? 가족 모두가 함께 주변 문화유적지를 방문하고 산보한다면 가족 모두가 행복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를 받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는 ‘이만열’이라는 한국명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한국을 잘 알고 우리말도 잘한다. 중국, 일본, 한국에서 모두 공부를 한 그가 최근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냈다. 거기서 ‘추석의 세계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 와 있는 모든 외국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추석 문화의 개발과 확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는 고향에 왔다 갔다 하면서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정작 고향에 가서는 음식 준비하느라 서로 갈등하면서 기진맥진해버리는 추석이라는 것이다. 아픈 지적이지만 그것이 오늘날 추석의 현실이다. 한국인의 사위인 그의 애정어린 제안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즐기고 행복한 추석이 되어야 하고, 주변의 이웃과 외국인들도 함께 즐거워야 하는 ‘세계화된 추석’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은 ‘이혼절’로 퇴색해 버린 추석이 다시 ‘추수감사절’처럼 감사하고 즐겁고 모두 행복한 명절로 되돌아 올 수 있을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