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촉구 나선 문재인
문재인 전 대통령이 남북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서다. 그는 축사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미 대화 재개를 추진할 걸로 보인다”면서 “한국도 소외되지 않고 당당하게 역할을 하려면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해 선제적으로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과 같은 대결주의적 남북 관계가 지속되면 북한은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를 모색할 거고 미국도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북한은 과거와 달리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할 것이고, 러시아와 중국도 그 주장을 비호할 것”이라며 “미국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더 고도화된 현실을 받아들여 대화의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에서 현상 동결과 엄격한 통제, 중장거리 미사일 폐기 등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평창올림픽을 매개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어떤 전환점을 만들어보려고 한 것은 평가받을 만했다. 필자도 당시 칼럼을 통해 이를 ‘신의 한 수’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구상에 따라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역사적인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2020년 6월 30일)이 성사된 것이다. 외신은 ‘세기의 회담’이라고 타전했다. 이에 앞서 두 정상은 싱가포르(2018년 6월 12일)와 하노이(2019년 2월 27일)에서 1·2차 북·미 정상회담을 했다.
마침내 한반도에도 해빙의 봄이 오는 듯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회의는 춤춘다.’고 했던가. 정말 춤만 추었다. 어렵게 성사된 회담이었지만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켰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상식적인 차원에서 추론은 가능하다. 북·미, 또는 남북 간에 오랜 불신으로 ‘제재 해제’와 ‘보상’의 맞교환에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중재자 격인 한국에 대한 불신과 원망도 커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북(對北) 제재를 풀어주는 대가로 김정은이 북핵 문제에 있어서 의미 있는 양보안을 제시할 걸로 기대했지만 북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영변의 핵’, 곧 과거의 핵으로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했다. 서운하기는 김정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에게 절실한 ‘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별 진전 없이 핵 포기만을 요구한다고 생각했고, 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회담을 주선한 한국이 트럼프보다 더 미웠을 것이다. ‘세기의 회담’으로 순식간에 국제뉴스의 중심으로 떠오른 김정은으로서는 이를 모욕으로 느꼈을 법하다. 실제로 그는 격노했다고 한다. 열차를 타고 평양에서 그 먼 길을 왔는데 이런 대접이라면서.
문재인 정권 내내 북이 우리에게 쏟아낸 막말과 각종 도발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을 겨냥한 ‘삶은 소대가리’란 말을 한번 보자. 이 말 속에는 지금 북한의 처지와 남북 관계에 관한 많은 것들, 특히 한국에 대한 북의 증오가 농축돼 있다. 아무리 적대관계여도 상대국의 국가원수를 향해 이런 막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삶은 소대가리’는 ‘사람 축에도 못 끼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의 욕이다. 우리 대통령이 왜 그런 무지막지한 욕을 먹어야 하나.
불행히도 이런 정도의 수모는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흔한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에게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북의 입장을 옹호·대변한다는 조롱이었다. 2018년 10월 프랑스 방문 때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니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국제사회가 풀어주기 위해 대북 제재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정말 확고했는가? 아니다.
비핵화는커녕 김정은은 매번 엇나가기만 했다. 2020년 6월엔 우리 국민의 혈세로 지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개성)를, 지난 10월 15일에는 경의선‧동해선 연결도로를 모두 폭파했다. 이로 인한 우리 측의 경제적 손실은 공동연락사무소가 447억원, 경의선‧동해선이 1800억원으로 추산됐다.
김정은은 지난 7월 최고인민회의에선 ‘핵무력의 헌법화’도 천명했다. ‘핵보유국’으로서 생존권과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핵무기를 고도화한다고 헌법에 명기한 것이다. 김정은은 남북 관계 단절도 선언했다. 통일도 포기하고 남북을 완전히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 관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두 결정은 윤석열 정부 때 나온 것이지만 김정은의 일관된 국제인식과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을 필두로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진보 진영은 ‘대화론’에 목을 매고 있다. 남북 관계와 주변 정세가 어려울수록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진행한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진보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이종석, 김연철 등 모두 ‘대화론자’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들이었다.
회의를 주재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복잡한 대외 환경에 경제주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격화될 외교‧안보 환경에서 민주당이 나아갈 길을 잘 찾아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자문회의를 상시 가동해 트럼프 시대에 맞춘 외교‧안보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여당인 국민의힘 쪽에선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일 긴급 점검회의에서 “(미국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한·미 동맹은 강화될 것”이라며 “추후 큰 규모의 세미나를 준비하기로 했다”고 밝힌 게 전부였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한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시대의 이른바 보수우파는 언어(言語)에서부터 지고 들어간다. ‘대화로 푼다’ ‘대화로 해결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말인가. 그러나 상대방이 ‘대화’를 얘기하는 순간 이쪽에선 거기에 동조하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어진다. “대화로 풀자”는데 누가 시비를 걸고 반대할까.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다. 침묵은 ‘반대’로 해석되고 당사자는 이내 대결주의자로 몰리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들 말싸움처럼 유치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보수우파는 ‘대화’ ‘평화’와 같은 말을 남보다 먼저 더 자주 얘기해야 한다. 아예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재인 정권 때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텐데 분위기는 벌써 ‘대화’다. 대북정책 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대결주의를 대화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으로 전쟁을 치를 생각이 아니라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릇 대화라면 상황과 여건이 맞아야 한다.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한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서 대화가 되고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대화하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탓도 있겠지만 상황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해졌다. 김정은은 이미 북·러 관계 강화를 생존책으로 결정한 듯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장 패퇴하지 않는 한 러시아와 동맹으로 함께 가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우리가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협조체제를 생존책으로 삼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김정은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한·미·일 3국에는 더는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김정은의 남북 관계 단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북과 직거래 가능성 낮아
전통적으로 북한은 남한을 자신들의 인질 또는 방패로 보았다. 남한의 국가적 정통성을 부인하고, 적화통일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사실은 남한이란 그늘 아래에서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생전의 김일성 주석이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그런 북이 김정은에 이르러 스스로 그 고리를 끊어낸 것이다. 김정은은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앞으로 대(對)중국 관계에 보다 공을 기울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대화론자’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트럼프가 한국을 제치고 북과 직거래할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는다. 트럼프는 바보가 아니다. 북이 설령 핵과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한·미·일 3국 협조체제라는 잘 작동되는 동맹의 틀을 스스로 먼저 깨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과 동맹, 그리고 트럼프의 시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해야 함은 맞다. 대화도 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 변화를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왜곡해 과잉 대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현명하지도 않고 현실에 맞지도 않다. 지금은 대화든 뭐든 강요하기보다는 조금 차분히 지켜볼 때다. 우리도 이젠 그래도 될 만 한 나라가 되지 않았나.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