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슈는 잠재 부실이 많은 상황에서 고금리가 지속돼 더 이상 미뤄 둘 수 없는 수준에 놓여 있습니다. 문제는 향후 수년간 구조조정을 거치며 모든 회사가 행복한 결말을 맞진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얼마나 잘 버텨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죠."
4일 서울 여의도 나이스신용평가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혁준 나신평 금융평가본부장은 국내 경제가 맞닥뜨린 최대 뇌관으로 단호하게 '부동산 PF'를 꼽았다. 올해 초 워크아웃에 돌입한 태영건설을 필두로 다수의 건설사가 고금리와 업황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 여파가 국내 금융 시스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이 본부장의 경고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PF발 대규모 위기설이 구체적인 시점과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추산하는 국내 부동산 PF 규모는 지난해 3분기 기준 134조원 수준이다. 반면 신용평가업계는 그 규모를 당국보다 70조원가량 많은 200조원대로 본다. 이 본부장은 당국과 시장 간 격차가 큰 배경에 대해 "금융당국이 산출한 금액에는 증권사 지급보증과 저축은행 토지담보대출 등 34조원 정도가 빠져 있다"며 "여기에 '그레이존(회색지대)'으로 꼽히는 새마을금고 관련 금액이 40조원 이상일 것으로 관측돼 이 부분까지 더한 게 실질적인 부동산 PF 규모"라고 설명했다.
국내 부동산 PF 리스크는 저금리 시기 비싼 가격으로 토지를 구입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고금리로 전환되며 사업성이 악화된 게 핵심이다. 이에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본PF에 앞서 진행되는 '브리지론(부지 매입용 대출)'부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신용평가업계는 대출 만기 연장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경매·공매로 사업장 정리가 본격화할 경우 브리지론 전체 규모(총 30조원)의 최대 50%에 달하는 15조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브리지론 손실은 본PF 단계에서의 사업자 참여 위축과 자금 조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된 리스크 전이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이번 부동산 PF 사태와 관련해 질서 있는 구조조정에 따른 연착륙을 자신하고 있다. 이 본부장도 일정 부분 동감한다. 그는 "금융당국은 지난 2년간 부동산 PF 대응을 준비하며 자금을 꾸준히 비축해 왔다"며 "정부가 지난해 대주단 협약에 나섰던 것도 시간을 벌면서 증자·수익 창출 등으로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자는 측면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상황이 가장 안 좋은 사업장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정리가 이뤄질 것"이라며 "지난해 결산 감사보고서가 이달 중 나올 예정이고 충당금 이슈가 있는 금융권은 실적 악화 가능성이 높아 신용등급 하향이 잇따르겠지만 이번 사태가 국내 금융 시스템 전반을 흔들 정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목할 대목은 일부 건설사와 금융회사의 도산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저축은행 등 비은행을 중심으로 일부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 본부장은 다만 "지난 2022년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나 지난해 새마을금고 뱅크런 조짐 당시 당국의 조기 개입을 통해 상황이 수습된 전례가 있는 만큼 2011년 저축은행 사태와 같은 연쇄 뱅크런 우려는 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역할은 구조조정 후폭풍이 전체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정하고 다리를 놔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은행 피벗에 저금리·저물가·부동산 회복? 현실 냉정하게 봐야”
이 본부장은 부동산 PF 사태와 엮인 기업·개인 등 시장 참여자를 향해 냉정한 판단과 대응을 주문했다. 코로나 팬데믹 전의 저금리 시대는 사실상 종식된 터라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부진 가능성을 상수로 놓고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에 나서고 한국은행(한은)도 이에 발맞춰 기준금리를 내리면 다시 0%대 저금리 시대가 올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다"며 "그런 상황은 상당히 오랜 기간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은이 통화정책을 활용해 부동산 PF 리스크에 대응할 가능성도 낮게 봤다. 이 본부장은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 경착륙을 우려할 상황이라면 (한은이) 나설 수 있겠지만 그럴 여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창용 한은 총재는 현재 100%까지 낮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본인 임기 중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걸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서 (금리 인하를 통해) 개입하게 되면 가계부채 관리가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한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더라도 2%대에서 멈출 것이며 진행 과정 역시 시장 기대보다 느리게 이뤄질 것이라는 게 이 본부장의 예측이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은이 기준금리를 5.25%에서 2.0%까지 내리자 역시 고물가 이슈가 불거졌었다. 이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다시 3.25%까지 올린 뒤 2.5%까지 낮추는데 2년가량 소요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국이 저임금을 앞세워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고 무역 장벽도 없던 과거와 비교해 현재는 유가 변수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미·중 패권 경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 오는 2025년까지 기준금리가 큰 폭으로 인하되는 게 가능한 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이 본부장은 각 이해 당사자 간 투자 성패는 이런 거시경제 현실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여전히 부동산 PF 브리지론을 붙잡고 있는 투자자는 향후 금리 인하 시 (브리지론) 전액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일종의 희망 고문"이라며 "부동산 시장 가격도 이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장기 평균과 비교해 높은 상황에서 부동산 보유자들이 조속한 시장 회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 본부장은 "이해 관계자들은 고금리를 상당 기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부동산 시장 내 가격 격차가 줄면서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접점을 찾게 되고 거래가 활성화하면 향후 브리지론 등 이슈도 정리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