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27일부터 30일까지 3박 4일간 중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미·중 양국이 갈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실무 소통 채널을 가동하는 등 관계 회복에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첨단 기술 제재 등과 같은 핵심 현안을 놓고는 여전히 팽팽히 맞섰다.
中 경제라인 3인방과 만나···실무 소통채널 가동 '성과'
러몬도 장관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그리고 존 케리 대통령 기후특사에 이어 불과 석 달 만에 4번째로 중국을 방문한 장관급 고위 인사다. 특히 미·중 간 이해 관계가 가장 밀접하게 얽혀 있는 경제·통상 분야를 담당하는 수장이다.
양국 모두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치열하게 대립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대화와 협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러몬도 장관은 지난 29일 리창 총리와 만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을 지지한다" "중국 발전을 억제할 의사가 없고 디커플링(공급망 등 탈동조화)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미·중 관계 안정을 강조했다.
최근 경제가 어려운 중국으로서도 미국과 경제 협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졌다. 리창 총리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무역 관계는 본질적으로 상호 이익과 상생"이라며 "양국에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을 강화하고 마찰과 대립을 줄여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미·중이 양국 간 무역 관계를 다루는 실무그룹을 구성해 연간 두 차례 차관급 회의를 개최하기로 하고 내년 초 첫 회의를 열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 국가안보 정책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한 수출통제 집행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차관보급 대화 플랫폼도 만들어 29일 첫 회의를 했다. 회의에서 양국은 중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 구매 제한, 갈륨·게르마늄 등 중국의 희귀광물 수출 통제 조치, 미국의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등 양국 간 '현재 진행 중'인 각종 제재 조치를 논의했다.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실무급에서 일단 소통을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이 나온다. 우신보 중국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장은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에 "비록 고위층 회담에서 미국 측 관세 철회나 첨단 기술 투자 제한 해제 등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정부 관료와 기업이 참여하는 소통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등 약간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대중 투자 불확실성, 국가안보 등 핵심 사안 놓고 이견도
다만 소통 메커니즘이 앞으로도 정상적으로 작동해 양국 간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우 원장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대중 무역정책이 정치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실제 소통 채널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웨이원 중국세계화연구소(CCG) 선임연구원은 차이나데일리를 통해 "바이든 정부가 대중 강경 노선을 버릴 가능성은 낮다"며 "미국은 앞으로도 중국의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개발을 방해하는 주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향후 미국은 중국과 디커플링을 하지 않겠다고 단순히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무역 방면에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보다 실질적인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양국은 국가안보 등 핵심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몬도 장관은 같은 날 허리펑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는 "우리는 국가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서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발언은 중국 관영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또 그는 지난 29일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취재진에게 "기업인들에게 중국이 너무 위험(risky)해져서 투자가 불가능하다(uninvestible)는 말을 점점 더 많이 듣고 있다"며 ‘중국 투자 불가론’도 언급했다. 로이터는 러몬도 장관이 방중 기간에 한 말 가운데 가장 직설적이라며 이는 중국 측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11월 APEC 미·중 정상회담 포석?···우군 확보 나서는 중국
한편 러몬도 장관 방중은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이미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여러 국가 고위급 지도자 등을 잇따라 자국으로 불러들여 우방국 확보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30일 제임스 클레버리 영국 외무부 장관이 중국을 찾았다. 영국 고위 관료가 중국을 방문한 것은 5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28일 개막해 다음 달 2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아프리카 평화안보포럼에는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 등 50여 개 아프리카 국가 대표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10월 시진핑 주석 초청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 포럼' 참석 차 중국을 방문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