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고민 끝에 마네킹을 이용해 이 사건을 시연해보고자 합니다."
서울중앙지법 417호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의 변호인 최후변론 시간에 8명의 배심원들을 향해 열띤 '무죄' 주장을 펼치던 변호인이 갑자기 자리 뒷쪽에서 마네킹을 꺼내들었다. 변호인은 배심원들 앞에서 마네킹을 이용해 여러가지 상황을 가정해보고 직접 시연하면서 배심원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배심원 앞 마네킹 꺼내 들고 상황 재연…"국민참여재판, '변론 충실화'에 도움"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승정 부장판사)는 최근 강간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열었다.
A씨는 2021년 7월 직장 동료인 피해자와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갔다가, 술에 취해 노래방 벽에 기대 쉬고 있는 피해자를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A씨 측은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사건에서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했고 A씨가 무죄를 주장하면서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 간의 다툼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특히 유전자감정결과 피해자의 팬티 음부 부위에 피해자의 DNA만 발견됐는데, 변호인은 사건 당시 피해자처럼 치마와 팬티스타킹을 입은 마네킹을 이용해 당시 상황을 재연하면서 피해자 진술의 모순점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번 사건에서 A씨 변호인을 맡은 손영현 변호사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더라도 그 자체의 합리성·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안이라 마네킹 시연 등을 통해 국민 배심원의 판단을 받아보고자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 판사는 "PT를 준비하고 법정 가운데에 서서 배심원들을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변론하는 모습은 국민참여재판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며 "국민참여재판이 수사기관과 변호인 모두 보다 변론을 충실하게 하도록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행 15년 됐지만 접수 건수 낮아…"활용도 높일 방법 찾아야"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처음 국내에 도입돼 올해로 시행 15년을 맞이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법 감정'과의 괴리를 좁혀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검찰과 변호사도 국민의 시선에 맞춰 재판을 좀 더 충실히 준비한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 국민참여재판 활용도는 높지 않다.
법원행정처의 '국민참여재판 성과분석'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 접수 건수가 △2016년 860건 △2017년 712건 △2018년 665건 △2019년 630건 △2020년 865건으로 1년에 몇 백 건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들의 만족감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배심원 96.6%가 직무수행에 만족한다고 답했고 88.6%는 재판 내용을 대부분 이해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이 국민의 사법 신뢰를 높일 수 있는데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외면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로펌의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법원에서도 변호인들에게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시행된지 15년이 됐어도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국민참여재판이 법관의 재판과 국민의 재판을 적절히 견제하고 국민의 '보편적인 법 감정'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만큼 좀 더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