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미 관계에 종속? 중국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2023-05-0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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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북핵 위기가 고도화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번 회담은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분명한 국제적 역할을 하겠다는 한국 정부가 유일 동맹국 미국과 동맹 체결 70주년을 기념해 공유 가치를 기반으로 확고한 미래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공동선언에서 밝힌 대로 북핵 위기에 대응하는 한국형 확장 억제 실행력 제고에 바탕을 둔 안보 동맹, 경제 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하는 경제 동맹,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기술 동맹을 천명했다. 또 국민 간 유대와 인적·문화 교류 심화를 통한 문화 동맹, 사이버 안보 기술·정책·전략에서 협력을 증진해 우주로까지 확대하는 정보 동맹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후속 작업이 중요하지만 일단 ‘미래로 전진하는 행동하는 동맹’ 체계는 분명한 모양을 갖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미국 보호주의 경향에 우리 기업들의 피해나 구제책에 대해서는 구체적 성과가 없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넷플릭스 25억 달러, 첨단 분야 34억 달러 등 총 59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 유치에 성공해 한국 문화 산업이나 청정수소, 반도체, 탄소중립 등 첨단 기술과 제조 능력 등 국제 경제 위상을 재확인하는 산업기술 협력 파트너로서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양국이 북핵 위협을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핵을 포함한 미국 역량을 총동원’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별도 문건으로 문서화한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이다. 또 이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정책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고 실행하기 위한 기구인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이는 나토와 미국 간 핵기획그룹(NPG·Nuclear Planning Group)과 유사하지만 NCG가 한·미 간 일대일 협의인 점을 감안하면 그 긴밀도와 결속도는 NPG를 초월하는 가히 맞춤형 한국형 확장억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한·미 양국은 미국의 핵무장 잠수함(SSBN)인 전략잠수함의 한국 상시 전개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날 만일에 사태에 대한 대비를 공식화함으로써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핵탄두 80개를 탑재한 잠수함발사핵미사일(SLBM)을 장착한 이 잠수함의 위력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억지력 중 하나다. 물론 한국의 핵무장론이나 핵잠수함 도입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투영되고 한국 정부가 떠안아야 할 핵 보유에 대한 부담 사이의 절충으로 보이지만 분명한 억지력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한·미 간 협의를 두고 우려하는 소리도 있다. 여전히 북핵은 협상과 대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한·미 협의가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북핵 문제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한반도 불안의 직접적 도발자이고 가해자인 북한을 마치 피해자인 양 인식한 데서 나타난 결과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 개발이 미국의 위협에 맞서 안전을 도모하는 ‘외교 행위’라고 주장했지만 핵 사용을 자의적이고 선제적으로 할 수 있다는 소위 ‘핵 무력 동원법’을 제정하고 나서는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핵 사용으로 한국을 협박하고 있다.

이 상황을 두고도 일부는 북한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 비핵화가 무망하기 때문에 대북 제재와 압박보다는 북한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요구하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폐와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이 해결되면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의 빈틈을 파고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갖춘 핵보유국이 되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핵보유국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평화의 시혜자가 되는 ‘핵 있는 평화(nuclear peace)'와 비핵화는 완전히 별개다.

이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 과정을 지켜본 중국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만 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언급하자 중국은 ‘말참견’이나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는 등 외교적으로 있을 수 없는 거친 언사를 거듭하더니 급기야는 한국 외교의 국격까지 언급하는 최악의 무례를 범했다. 미국이 펼치는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은 미국의 기술패권주의며, 이에 앞장서는 한국은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물론 매체까지 동원해 협박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이야말로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노골적 간섭이 아니고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여기서 중국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중국은 한국 현 정부의 모든 입장 표명을 한·미 관계에 종속된 한국의 중국 압박으로 간주한다. 중국이 그토록 강조하는 핵심 이익은 한국에도 있다. 한국은 북핵 위협에 직접적으로 시달리는 최대 피해국이며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에 국운을 경주하는 정상 국가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한국 정부는 작년 12월 한국판 인·태 전략을 발표하면서 중국을 주요 협력 파트너로 규정했다. 한국의 고충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 수용만을 강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한국이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 언급이 한·중 수교에서 확인된 ‘하나의 중국’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는 국제주의 원칙의 천명이다. 이 지역은 통상 국가 한국 수출입 물동량의 50%를 소화하는 해상 통로이며, 중동에서 수입되는 원유 80%가 통과하는 중요 수송로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전기차 배터리 역시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와 갈등하면서 경쟁력 유지를 위해 분투하는 중임을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있는 외교에서 제로섬(zero-sum)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북핵을 계속 방치하면 동아시아는 핵 도미노 소용돌이에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나 한국의 핵무장론이 제기되고, 대만 역시 ‘안전’을 명분으로 핵 보유 시도에 나설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 그토록 강조하는 전략 균형(Strategic equilibrium)도 깨지고 북한이 베이징의 말을 계속 수용할 것이라는 어떠한 보장도 할 수 없게 된다. 일방적으로 한국의 중립이나 균형을 요구할 게 아니라 중국도 이제 ‘건설적 역할’에서 벗어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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