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중국식 상호주의' 암초에 걸린 韓中 관계

2023-01-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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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한·중 수교 30주년을 결산하는 작년 12월 16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상호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류 확대를 추진하기로 한 합의가 무색하게 한·중 관계가 또다시 암초를 만났다. 중국은 지난 10일 소셜미디어와 위챗 공식계정을 통해 상업 무역, 관광, 의료, 일반 개인 사정을 포함한 한국 국민의 중국 방문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외교부는 소수의 국가가 과학적 사실이나 자국의 감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중국에 차별적인 입국 제한을 가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상응 조치임을 강조하면서 보복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그동안 고수해 온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갑자기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아무런 방역 조치 없이 해외여행 허가 빗장을 풀었다. 이에 따라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발 입국자의 코로나19 확진 비율이 30%에 달하자 한국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중국에서 들어오는 내·외국인에 대해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의무화하고, 외교·공무 등 목적 외에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이미 최소 16개국이 방역 조치를 강화했고 모로코는 중국인 입국 금지라는 강수를 두는 등 위드 코로나에 무임 승차한 중국의 행태를 견제하는 중이다.
그러나 중국은 상호주의를 내세우면서 한국의 비자 발급 제한에 맞불을 놓았다. 비자 발급 제한을 예고한 일본도 이 조치를 시행하기도 전에 같은 명목으로 비자 발급 제한을 당했다. 한국은 코로나 발병 초기였던 2020년 초 중국이 자국인 보호를 위해 한국인 입국을 금지했을 때도 중국인 방문을 규제하지 않아 중국발 코로나의 폭증과 마스크 품귀 등 부작용을 겪었기 때문에 이번 방역 강화 조치는 충분히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다. 한국이 다른 국가들의 음성 확인서 요구보다 높은 비자 발급 제한을 시행하는 것도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강조하는 상호주의가 매우 중국적인 이중 잣대로 재단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일단 한국의 비자 제한 범위는 관광, 취업 등 제한된 범위 안에서 중국인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 데 비해 중국의 조치는 더 포괄적이다. 한발 물러나 상호주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해도 이는 분명히 비례 대응을 넘어선 비합리적 '과잉 보복' 색채가 농후하다. 한국의 조치가 최장 2개월인 한정 조치임도 무시하고 무기한 제한임을 명시하면서 한국의 조치 변화 여부에 따라 중국의 조치도 조정될 것이라면서 공을 한국에 넘겼다.

중국의 이 같은 행동은 코로나 상황이 계속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돌파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코로나 통제가 국제사회 공조를 통해 이루어진 기본적 규범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코로나 상황의 통계 수치 발표를 중단해 코로나의 국제 통제 협력 구도도 붕괴시켰다. 현 체제의 가장 적극적 지원군인 애국주의 청년들이 중심이 된 백지 시위를 통해 분명한 민심을 확인하고 침체된 경기를 소생시키고자 위드 코로나로 급격한 정책 전환을 시도했지만 국제사회가 반발하자 가장 부담이 작다고 판단한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상호주의를 명목으로 한국을 겨냥한 데는 분명한 저의가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이 특정국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비자 발급 및 수속을 중단한 것 자체도 상호주의에 위배됨은 불문가지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중국의 위드 코로나를 환영하고 있고 방역 강화도 ‘음성 확인서’ 요구 수준인데 한국은 단기 비자 발급 제한 정책을 시행했고, ‘사사건건 중국의 정책에 협력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프레임 구축을 시도한 것이다. 결국 어려워진 국내외 상황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한국이 가장 적절한 공략 대상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지난 20차 공산당대표대회를 통해 시진핑 3기 체제가 출범했고 지난 연말 새 외교부장이 지명됨에 따라 왕이(王毅)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친강(秦剛) 외교부장으로 구성된 강성 외교라인도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새 정부가 한·미 동맹을 강조하고 가치 중심 외교 전개를 밝히고 한·미·일 협력 구도 강화를 추진하자 중국은 차제에 한국에 일단 강경한 외교적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벌어진 중국의 ‘비밀경찰서’ 사건이나 한국 국회의원들의 대만 방문에 대한 불만도 분명히 숨어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이 이중적 잣대로 상황을 호도한다는 데 있다. 2020년 초 외국인에 대해 전면 입국 금지를 시행하면서는 ‘외교보다 방역이 우선’이라던 중국에 한국의 방역 강화는 졸지에 차별적 조치가 됐다. 언론이나 정부기관도 여론전을 전개하면서 반한(反韓)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외교부는 ‘중국인에게 차별적 방법을 취해선 안 된다’며 민족주의를 자극한다. 공항에서 도주한 중국인에 대한 보도는 어디에도 없이 중국발 승객을 구분하기 위한 노란 표찰을 중국인에게만 적용한 것처럼 호도하고 격리 시설이 열악하다는 거짓 사진도 올라가 있다.

이번 중국의 조치는 겨우 정상화된 국제사회 활동에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동시에 자국의 경제적 파워를 다른 국가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임을 가정하는 또 다른 압박 외교다. 중국은 국제사회가 지난 3년여에 걸친 분투를 통해 광범위한 백신 접종과 의약품 개발, 다양한 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이제 겨우 정상 생활이 가능해졌음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세계적 국가를 자처하는 중국이 갑자기 준비 없는 위드 코로나로 전환해 주변국, 나아가 세계에 부담을 주는 행위를 하는 것은 일종의 ‘자발적 고립’ 행위와 다름없다.

한·중 관계에 대한 파장도 걱정된다. 외교란 상대방이 있고, 특히 감정적 문제는 쉽게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의 대응 조치는 향후 한·중 관계가 쉽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 문제는 시간이 해결할 수 있지만 미·중 간 전략경쟁 구도에서 미국과 가까워지려는 한국에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강조하면서 제동을 걸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도 포기할 수 없는 한국적 가치와 이익 및 원칙이 있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논리적 맞대응과 의지의 표현, 물러서지 않는 실천적 조치의 병행은 필수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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