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풍선의 덫'에 걸린 미·중 관계

2023-02-1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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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중국이 기상관측용 풍선(weather balloon)이라고 주장하는 무인 비행체가 미국 F22 전투기의 공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면서 미·중 관계가 다시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2월 5일로 예정됐던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방문은 전격 취소되었고,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도 없던 일이 되었다. 이로써 작년 12월, 발리에서의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관리’하자는 양국 정상의 합의와 고위급 소통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약속도 물거품이 된 상황으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중국은 사건의 확대를 바라지 않는 모습이지만 미국은 행정부와 의회가 강력한 대중 공세를 펼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안정적 관계 유지와 경제 회복이라는 이중 목표의 부담을 안고 출발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고의든 사고든 미국의 대중 압박에 빌미를 제공하는 자충수를 둔 꼴이 되었다. 이 풍선 사태를 둘러싸고 중국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는 중이다. 단순 실수라는 관측부터 미국과의 긴장 완화를 꾀하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군부의 반발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진핑 리더십의 문제를 노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국내적으로 코너에 몰린 시진핑 지도부가 미국과의 전략 갈등을 촉발해 눈을 외부로 돌리려는 시도의 일환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 새로 구성된 미국의 공화당 하원 체제가 중국에 대해 어떤 모습을 보일지 떠보려는 속셈도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어느 경우든 중국에 유리할 것은 없어 보인다.

현재까지 중국은 이 풍선이 민간용 기상관측 풍선으로 통제를 상실하고 표류 중이라는 상황을 전달했음에도 미국이 군사적 공격이라는 과잉 반응을 보였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격추된 잔해를 수습한 미국 측은 이 풍선에는 일반 기상용 관측 탑재 장비와 관계없는 통신·위치 정보수집 다중 안테나 등이 수거됐고, 이는 명백히 정보 정찰용임을 드러냈다고 발표했다. 미 북서부 몬테나 주에서 발견된 이 비행 풍선은 이들 장비를 탑재하고 민감한 지역을 8일에 걸쳐 비행한 스파이 풍선이라는 것이다. 특히 몬테나주에는 미국의 3개 핵미사일 격납고 중 하나인 제341 미사일 기지인 맘스트롬 공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미국은 주권을 침입하고 영공을 침범한 국제법 위반과 안보 위협 때문에 격추는 당연했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이 정찰 풍선 개발과 활용에 공을 들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중국의 한 관방 연구기관에서는 작년 5월 최고 9천 미터 상공에서 자료 수집이 가능한 ‘지무(極目)’1호Ⅲ 비행선을 자체 개발했음을 밝혔다. 또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국인민해방군의 협력자로 제재를 받은 국유기업인 중국항공공업집단(AVIC)은 민간용을 내세우면서 세 종류의 ‘특수’ 열기구를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군 기관지인 해방군보(解放軍報)도 상공에서 장기 정찰과 감시가 가능한 최첨단 열기구의 개발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군사적 용도로의 활용에 상당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중국인민해방군이 민간용임을 내세우지만 실제 용도는 군사 정찰용인 스파이 풍선 선단을 운용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정찰 풍선은 제조 원가가 낮고, 격추돼도 인명 피해가 없어 위성 정찰 보완용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위성의 경우 통과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위성 통과 시 정찰 대상 목표의 가동을 일시 중지시키면 정보 노출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정찰 풍선은 오랫동안 상공에 머무르면서 보다 상세한 자료 수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위성 정찰의 단점 보완이 가능하다. 미국 측은 중국의 정찰 풍선이 이미 5개 대륙에서 발견됐다면서 최근 몇 년간 중국 인민해방군은 전시에 표적을 조준하는 레이더의 정확도를 높일 데이터를 수집해 중국 내 핵기지 건설에 활용할 것임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미국 안보에 도전한 첫 번째 직접적 저강도 군사행동으로 간주해 중국의 정찰 풍선을 격추하는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문제는 정찰 풍선 사태가 미국 정부가 ‘믿을 수 없는 중국·함께 할 수 없는 중국’을 내세우는 반중 분위기 속에서 바이든 정부의 대중 압박 강화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 하원은 즉각 바이든 행정부에 대중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대중 강경파인 매카시 하원의장은 7일 하원 군사위원회와 재무위원회를 열어 ‘미국 국방에 대한 중국의 위협’과 ‘중국의 경제적 위협’을 주제로 두 개의 청문회를 동시에 개최했다. 특히 재무위원회는 무려 17개의 대중 제재 법안을 심의에 올렸다. 또 미국의 각주에서는 중국 국적자와 중국 기업의 토지 매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한다. 정찰 풍선 사건으로 미 행정부와 의회를 여야 구분 없는 같은 편으로 만들어 향후 대중 압박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풍선이 민간용이냐 정찰용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강조하는 것은 중국이 경제나 기술 분야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한 시도에 대한 중국 제어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동맹과도 정찰 풍선 사건의 상황 공유를 통해 인도-태평양전략과 인도·일본·호주와 함께하는 4개국 협의체 쿼드 (QUAD),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워크 (IPEF),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CHIP4), 영국·호주와의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 등의 당위성을 계속 설파하면서 중국 압박의 호기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다. 무역 통상 분쟁과 기술 패권 갈등 그리고 민주 가치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시진핑 3연임을 탄생시킨 중국 20차 공산당 대표대회를 겪으면서 계속 악화 일로였던 양국 관계가 ‘풍선의 덫’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제 양국은 경쟁(競爭)을 넘어 적대(敵對) 수준의 신냉전 경향과 과거 미·소 관계처럼 ‘외교 격리’가 초래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이 이러한 미국을 앞에 두고 미국의 일방적 대중 압박의 부당성만을 강조하는 대처와 반응으로는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특단의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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