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0월의 마지막 날…피지 못한 청춘들 가슴에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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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못할 참변에 울부짖는 아버지

아수라 현장서 손 놓고 떠난 남편

하나뿐인 동생 영영 이별에 눈물만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 압사 사고 현장 앞에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조화가 놓여있다. 지난 29일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규모 압사 참사가 났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자식은 가슴에 묻고 부모는 땅에 묻는다는데...축구를 참 잘했는데 운동을 안 시킨 게 후회돼요.”

31일 고양 명지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고(故) 윤성근씨(28)는 외국계 회사를 준비 중이던 취업준비생으로 29일 이태원에서 참변을 당했다. 고 윤씨의 아버지 윤석보씨는 아들을 “웃음꽃 제조기”로 기억했다. 

윤씨는 가족에게 자상했던 아들을 회고하며 ‘예쁘다’는 수식어를 반복했다. 성근씨는 부모님에게도, 23살인 여동생에게도 자상한 아들이었다. 윤씨는 “워낙 엄마한테 잘하는 아들이었다. 스파게티 같은 요리도 엄마한테 잘해주고 여동생과도 사이가 좋았다. 내 입맛에는 안 맞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여동생은 오빠의 사망소식을 들은 이후 줄곧 우느라 탈진한 상태다. 집에서 쉬느라 빈소는 지키지 못했다. 30일 아들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들었던 건 아버지였다. “전날 오후 1시쯤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연천에서 일하는 중이라 아내에게 가보라고 했다”고 했다.

아내로부터 아들의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윤씨는 믿지 않았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처음에도 믿지 않아 국과수에 사인 의뢰를 부탁했다. 오늘 검사가 끝나 시신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윤씨는 “자식은 가슴에 묻고 부모는 땅에 묻는다고 하지 않나. 마음이 추스러질 것 같지도 않고 추스르고 싶지도 않다. 아들이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진취적으로 해내려고 하는 모습이 가장 좋았다. 축구를 참 잘했는데 운동을 안 시킨 것이 후회된다”고 아들의 모습을 그렸다. 

같은 병원 1호실에는 성근씨와 함께 놀러나갔던 고 심모씨(28) 빈소가 차려졌다. 친구들끼리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나란히 참변을 당한 것이다. 심씨의 아버지는 남동생과 워낙 사이가 좋았다는 말을 하며 울먹였다. 심씨와 같이 놀러갔던 여자친구 역시 이태원에서 사망, 일산 동국대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상태다.

이태원을 함께 찾은 부부의 사연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A씨 부부는 29일 이태원을 함께 찾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지인에게 핼러윈 축제 풍경을 구경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A씨는 "남편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다고 그를 떠올렸다.

그는 "저는 하반신이 꽉 껴 있다가 겨우 옆 벽을 타고 올라갔는데 남편은 앞으로 밀려갔다"고 전했다. 현장을 벗어난 A씨는 아수라장이 된 사고 현장에서 남편을 찾아 헤맸지만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과 마지막이 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안치된 서울 시내 한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는 근조화환 [사진=권보경 수습기자]

핼러윈 축제 특성상 희생자 대부분은 20~30대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C씨는 이태원 참사로 하나뿐인 동생을 잃었다. 독립해 혼자 지내온 동생과 자주 연락하진 않지만 기념일마다 잊지 않고 연락을 주던 살가운 동생이었다. C씨는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난다"며 빈소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 병원에만 이태원 참사 희생자 4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용산의 한 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유족 D씨는 이번 사고로 사촌 동생을 떠나보냈다. 그는 "동생은 (유명 대기업에 재직 중인)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였다"며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직장 동료를 잃은 이들도 있었다. 희생자 E씨는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입사한 지 2년, 회사에서 막내 축에 속했다. 그의 직장 상사는 "회사 분위기가 상당히 어둡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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