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 후폭풍] 외국인들 '셀 코리아' 징후···기업, 돈줄 막힌다

2022-07-15 07:00
  • 글자크기 설정
한국은행이 사상 최초로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국내 기업의 자금조달이 한층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리 인상을 계기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상장주식·채권을 매각하는 '셀 코리아(Sell Korea)'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기업이 자본조달에 필요한 유동성이 사라지고 있는 탓이다.

올해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공급망 불안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국내 기업이 자금조달도 어려워진다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 철수에 자금시장 경색 가능성 높아···기업 자금조달 우려

14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자본조달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 금융당국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올해 상반기 6개월 동안 국내 상장주식을 연속 순매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기간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도한 상장주식 규모는 19조9040억원에 달한다.

상장주식보다 안전자산으로 평가받았던 상장채권에 대한 투자도 순회수로 전환됐다.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가 보유한 11조4770억원 규모의 국내 상장채권이 만기를 맞이했으나 순매수 규모는 10조5430억원에 그쳤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채권시장에서 9340억원 규모의 자금을 회수한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채권시장에서 순회수에 나선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2020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실제 기업에 직접적 연관이 있는 회사채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우량기업 회사채는 올해 초부터 금리가 급격히 오른 덕에 외국인 투자자의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3년 만기 신용등급 AA 무보증 회사채의 금리가 2.9%를 돌파한 지난 2월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회사채를 급격히 사들였다. 1월 말에는 1010억원에 불과했던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상장 회사채 보유 규모는 4월 말까지 3개월 만에 9690억원으로 9.5배(8680억원) 이상 늘었다.

그러나 최근 2개월 동안 회사채 금리가 2~4월보다 더욱 올랐음에도 이전만큼 국내 회사채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AA등급 회사채 금리는 지난 5월 3.86%로 전고점을 형성했고 지난달에는 4%를 상회했다. 반면 5월에는 10억원 순회수, 지난달에는 300억원 순투자하는 데 그쳤다.
 

이는 최근 국내외 글로벌 주요국의 기준금리가 높아지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미국도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해 금리를 75bp 인상했으며, 국내 한은도 1월과 4월, 5월에 각각 25bp씩 기준금리를 높인 데 이어 이달에는 사상 최초로 50bp를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해 위험자산 회피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로 국내 기업들이 자금조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국내 자본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본시장이 더욱 경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국내 대다수 비우량기업들은 이번 빅스텝을 포함한 국내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을 시도하기도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자금조달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고, 설령 추진하더라도 투자자를 찾기가 어려워 오히려 기업의 신용도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금리인상 때문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졌다"며 "국내 자본시장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본시장이 더욱 경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악 시나리오보다 금리 인상 가팔라"···기업 이자비용 상상초월 우려

올해 금리 인상의 강도가 예상을 초월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초 국내외 전문가들이 예단한 '최악의 상황'보다도 금리 인상이 훨씬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기업들의 이자비용이 감당할 수 없게 불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재계에 따르면 올해 초 국내외 전문가들이 예측한 최악의 상황보다 현재 금리 수준이 더욱 높아졌다. 전문가들의 예측이 발표되고서 6개월도 지나지 않았으나 금리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실제 국내 한 신용평가사는 올해와 내년까지 금리 인상에 따른 시나리오 테스트 결과를 지난 3월 발표했다. 해당 테스트는 지난해 9월 말 국내 기준금리가 0.75%였을 때를 기준으로 올해 평균 금리가 100bp 상승할 경우 보통(Base), 125bp 상승할 경우 최악(Negative)의 상황으로 진단했다.

문제는 해당 시나리오 테스트가 발표되고서 6개월도 지나지 않았으나 국내 기준금리가 150bp 인상됐다는 점이다. 이는 시나리오 테스트가 가정한 최악의 상황인 125bp보다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이다.
 

다수 국내외 전문가들도 국내 신평사의 시나리오 테스트와 유사한 예상을 내놨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올해 1월에도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1.5%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시기 5대 금융지주 수장들도 기준금리가 최대 1.75%까지 인상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해외 투자은행(IB)인 JP모건도 올해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1.5% 이내에서 조절할 것으로 관측했다.

더 큰 문제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초월한 금리 인상이 기업의 수익성에 치명적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올해 기업의 수익성 증가 폭보다 이자비용이 더욱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상당수 기업은 2020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0.5% 기준금리 시대에서 매우 낮은 이자비용을 지불하며 자금을 조달했다. 지난해 하반기 다소 기준금리가 올랐으나 1% 이하에 그쳤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에는 기준금리가 2.25%로 급등한 상황이라 이자비용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산업군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적지 않은 기업들의 이자비용이 2배 이상 급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 기준 금리가 100bp 상승하면 520억원의 수익성 저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기업의 수익성은 그만큼 급격히 늘어나기가 어렵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위축되는 등 경영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저금리 시기에 빚으로 연명했던 좀비기업이 연달아 도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은은 지난 2020년 기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기업(이자보상비율 100% 이하 한계기업) 비중이 33%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재계 관계자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좀비기업은 물론 자금여력이 부족한 창업 초기 기업 등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수 기업이 도산하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우량한 기업들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