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新무역정책' 수립을 위한 고언

2021-1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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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지난 12월 6일, 제58회 무역의 날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1964년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여 수출의 날을 제정한 뒤 회갑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국 수출은 비약적인 증가를 하였다. 1964~2021년간 명목으로 6400배 증가하였고 국제물가 상승률 8.4배를 고려하면 800배 정도 늘어난 셈이다. 그에 힘입어 한국의 GDP도 1964년 30억 달러에서 2020년 1조6000억 달러로 500배 증가하였고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60배 성장했다. 금년 연간 수출액은 6400억 달러이고 수입을 합한 무역액은 1조2000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리라는 예상이다.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경제발전에 관한 유형화된 사실(stylized facts)들은 제조업이 서비스 등 다른 산업이 가지기 어려운 장점, 즉 자본 축적, 규모의 경제, 기술발전 및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발전의 중추적 부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의 원동력은 바로 제조업과 수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수출을 위해 투자와 기술도입이 필요했고 소득 증대는 국내 소비 증대로 순환되었다. 지금은 투자, 내수 등 다른 부문이 커졌다 하여 수출을 과소평가할지 모르지만 국내의 모든 부문이 수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간과한 잘못된 생각이다. 국내 시장이 크지 않은 한국 경제에서 무역의 소명은 끝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무역을 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발전적인 질문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수출과 무역 발전을 위해서 몇 가지 고언을 해보기로 하자.
 
첫째, 수출 및 무역의 부가가치 추이에 관한 분석과 정책 대안을 수립하여야 한다. 분명 수출과 수입은 GDP의 중요 부문으로서 총액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 등에서 제기해 왔던 수출에 대한 비판론의 핵심은 수출이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고 투자, 고용과 산업연관 등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가 낮아졌다는 점이었다. 수출 비판론에서 출발한 내수 대안론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수출에 제기된 문제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출은 한국 경제의 성장기에는 인력과 자본의 생산성 등이 국제적 비교우위가 있어서 국내 거점의 생산이 중요했지만, 개도국에 대한 국제투자 증가와 범용 기술 수준의 국제적 평준화 등으로 글로벌 생산의 대대적 개편이 이루어졌다. 산업 부문과 생산 단계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외투자와 글로벌 인-아웃 소싱(global in-out sourcing)은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최근 세계 보호무역과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이 재편되고 있고 한국 상품의 경쟁력과 유불리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총액기준을 넘어 부가가치 기준과 고용 등 국내 경제에 대한 연관성을 중심으로 수출을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둘째, 국가별과 품목별 수출을 따로따로 보기보다는 이 둘을 함께 묶어 매트릭스(matrix)로 분석하여 무역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수출 대상국 1위는 중국(26%)이고 제1위 수출 품목이 반도체(20%)라고 평면적으로 보면 정책적 메시지를 얻기 어렵다. 하지만 2020년 한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의 중국 비중이 50%이고 홍콩까지 합하면 80%라고 입체적으로 분석하면 대안이 달라질 수 있다.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 중국, 대만, 일본 등이 투자 확대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삼성전자의 대미 투자 확대 등으로 지금 한국이 가지고 있는 반도체의 수출 판도가 언제 바뀔지 알 수가 없다. 매트릭스에 경쟁국까지 추가하면 그림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어디 반도체뿐이겠는가? 해외시장-품목-경쟁국의 3차원 매트릭스 분석과 정책 대안이 필요한 분야는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은 물론 성장산업까지 확장된다, 이미 무역 부서에서 다양한 분석과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대책이 수립되고 있다면, 그것은 수출입 통관 통계를 집계하는 관세청이 무역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에 통계 협조를 원활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중의 안도가 아닐 수 없다.
 
셋째, 제조업과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무역정책이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예전에는 수출 역량 강화를 위하여 환율, 자금, 인력, 공장용지, 기술도입 등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였다. 지금은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과 통상규범이 바뀌었고 수출을 위하여 동원할 수 있는 수단들은 별로 많이 없다. 무역정책 대신 자유무역협정을 교섭, 체결하는 통상정책으로 중심점이 이동하였고 기술개발과 산업 활동이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다. 예전에는 상공부 장관실과 같은 층에 상역국이 있어 비중이 높았지만 지금 무역국은 장관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긍이 가지만 무역 전망과 무역정책의 유효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배가 제대로 항해하기 위해서는 엔진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선장과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도 무역학과의 이름이 사라지고 국제통상학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국제통상도 결국은 무역을 근간으로 한다. 지역별·품목별·경쟁국의 3차원 매트릭스 수출 분석을 하고 취약한 수출지역의 품목 경쟁력 제고 시그널을 생산 쪽으로 보내고 통상교섭을 요청하는 무역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제부터라도 무역이 기술개발 정책 및 산업 정책과 연계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시너지를 제고하는 선장의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아울러 무역정책의 수단들을 점검하여 제대로 써야 한다. 정부가 해외마케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효과가 높으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조직이 있고 파견된 사람이 기업을 지원하고 있겠지만 투입비용 대비 산출, 즉 가성비를 높이는 방안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WTO 체제에서 유일하게 허용된다고 하는 신용보증이나 무역보험도 마찬가지이다. 무역보험 가입실적을 누적하여 수출지원 실적으로 제시하기보다 무역보험이 한국의 수출에 더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따져 봐야 한다.
 
넷째, 수입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생뚱맞게 왜 수입을 애기할까 할지 모르지만 개방체제에서 국내 수입은 수출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된다. 비교우위 차이로 수출 품목과 수입 품목이 다르기도 하지만 산업 내 무역이 확대되어 수출과 수입의 품목 스펙트럼이 상당부분 겹치고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우리말 속담처럼 지금은 예전처럼 미국 시장이 아니라 국내 시장이 국제경쟁력의 시험대이다. 수입 정책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수출을 하는 주체는 국내에서 독과점적인 대기업인 경우가 많다. 불공정한 수입에 대한 대책은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국내 기업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으로 수입이 억제되고 있다면 장기적인 한국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개선될 필요가 있다. 강한 국제경쟁력을 가진 산업은 수출 전선에서 뿐만 아니라 수입품과의 국내 경쟁도 이겨내야 한다. 독과점적인 내수 시장의 이윤이 수출경쟁력의 자양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산업과 통상과의 연결(connectivity)을 바탕으로 한 무역정책의 재정립은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높이고 더 강한 미래 한국경제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신(新)무역정책의 출범을 기대해 본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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