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요소수 공급망 관리, 정부가 나서는 게 옳나?

2021-11-16 05:00
  • 글자크기 설정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요소수 파동으로 경유차 대란이 발생하고 정부와 기업이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평소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간으로 대외지향적 글로벌 경제 통합에 적극 참여하여 왔다. 최근 코로나와 미·중 간 진영 대립으로 촉발된 글로벌 밸류 체인(GVC)의 축소와 주요국들의 니어쇼어링(near-shoring) 움직임은 한국의 대외지향적 정책 방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 요소수 문제가 발생하였다. 기업 중심으로 상품을 자유롭게 교역하도록 하는 경제통합과 정부 주도의 필수 물자 관리는 상충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자유무역을 위하여 노력해온 한국 정부는 이제 필수 물자들의 공급망을 직접 챙겨야 하는 새로운 요구마저 받고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된 각국의 지역무역협정(RTA, 주로 자유무역협정인 FTA) 숫자는 568개이고 이 중에서 발효되고 있는 협정은 350개이다. WTO에 가장 최근 가입한 나라는 전쟁으로 잘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인데 이 나라도 인도 등과 두 개의 지역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164개국의 WTO 회원국들이 모두 예외 없이 지역무역협정을 갖고 있다. 가장 많은 지역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는 EU 회원국들로 46개의 협정이 있고 영국 등 EU 비회원 유럽 국가들이 30여개 수준, 그리고 싱가포르, 멕시코, 터키 등이 23개, 일본은 18개, 중국 16개, 미국은 14개의 지역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WTO에 따르면 한국은 20개의 지역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FTA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FTA 포털을 보면 현재 17개 협정이 발효되고 있는데 WTO 집계에서 GSTP(개도국간 특혜무역협정으로 한국이 아직 회원국), APTA(아시아태평양무역협정) 등 통상적인 FTA로 보기 어려운 3개가 제외되어 있다. 타결되었으나 아직 발효되지 않은 RCEP(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등 5개 협정을 포함하면 한국이 체결한 협정은 22개이고 한·중·일 FTA 등 5개 협정이 협상 중에 있다.

지역무역협정은 국가 간의 올림픽 경기처럼 메달 경쟁을 하는 각축장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협정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각국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협정들을 많이 체결하는 내실을 다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이름이 “경제”통합이고 “자유무역”협정이지만 지역무역협정 추진은 경제보다 정치적인 고려들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세계은행(World Bank, Trading Blocs, 2000)은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정치적 동기로 안보(security) 강화, 협상력(bargaining power) 제고, 개혁(reform) 추진, 그리고 통합을 위한 로비(lobbying) 등을 꼽고 있다. 정치적 동기로 출발했다고 해서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럽연합은 전쟁의 참화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안보의 목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MERCOSUR(남미공동시장)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 라이벌 갈등 완화, 동남아의 아세안(ASEAN)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간 맹주 싸움, 그리고 중국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한 안보의 고려가 추진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멕시코는 일수불퇴의 개혁 추진을 위하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금의 USMCA)을 추진했다.

경제통합이 정치적인 고려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더라도 결실은 결국 경제적인 측면에서 찾게 된다. 중요한 경제적 효과들은 무역비용 감소 및 무역확대(무역창출), 중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제와 생산 증대, 그리고 국제투자 확대 등이다(Handbook of International Economics). 경제통합의 키워드는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이다. 내가 비교우위가 있는 것을 확보하고 비교열위가 있는 것은 내주어야 한다. 바로 협상 이익의 균형(balance of interests)이다. 양측의 비교열위 분야에 고용이 많고 정치적 표가 많으면 교섭이 어려워지고 깊이가 낮은(shallow) 협정으로 마무리된다. 비교우위와 국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나 기업은 살지만 반대로 경쟁력이 없으면 퇴출된다. 수입의 증가는 소비에는 좋지만 국내 고용의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경제통합에 대한 반대가 많다.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통합을 찬성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들이 나뉘게 되어 이것은 다시 표로 환원되어 정치적인 고려로 이어진다.

자유무역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통합의 주된 플레이어는 기업들이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경색으로 여러 나라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최대 경제통합체인 EU(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영국은 때마침 코로나까지 겹쳐 노동력과 석유 부족 등 물류 문제를 겪고 있다. 영국과 달리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나라도 일부 품목의 병목현상을 겪고 있다. 수입품목 1만2000개 중에서 약 1/3이 특정국 수입의존도 80%가 넘고 약 1/6이 요소수 문제의 진원지인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요소수 수출 관리를 한 중국이 원인 제공을 하였지만 GATT 제11조에서는 불가결한 상품의 중대한 부족을 예방하기 위한 각국의 수출 제한을 허용하고 있으니 무작정 중국을 비난만 할 수도 없다.

각계에서 정부가 필수 품목들의 공급망 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 행동에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다. 요소수 같은 품목들은 우리에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비교열위 품목들이다. 이런 품목은 우리가 생산 또는 비축하는 것보다 수입해서 쓰는 것이 더 유리하다. 우리는 자원개발의 비싼 학습 경험도 하였고 석유와 희소금속 등 현재의 비축 정책을 확대하는 것은 비용 경제적이지 않은 측면도 있다. FTA의 추진 과정에서 정치적 항목인 안보(security)가 강조되어 필수 물자의 자유무역 제외가 요구되는 상황도 우려된다. 코로나가 빚은 일시적 상황이 한국이 그간 진행해온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의 노력을 뒤로 후퇴 시킬까 걱정된다. 정부는 필수 물자의 국내 생산과 비축보다는 기업들과 힘을 합쳐 필수 물자의 공급망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체제를 운영하면서 문제에 대응하여야 한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대책도 시장원리에 부합해야 하고 정부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지속해온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의 노력을 훼손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