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그래서 '오징어게임' 사회를 물려줄 건가

2021-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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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더 뻗어 나가려면 사회적 자본 축적해야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넷플릭스에서 세계적인 빅히트를 치고 있는 오징어 게임. 끔찍한 장면들을 겨우겨우 참아가며 본 이 영화는 교훈과 더불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국 사회와 경제의 문제들을 극적으로 연출하여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킨다.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사람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읽힌다.
<혼자서 볼링하기(Bowling Alone)>라는 책에서 미국의 정치학자 퍼트남(R. Putnam)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경제활동을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자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신뢰(Trust), 사회규범(Norms), 그리고 네트워크(Network)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와 같은 무형의 것들이 도대체 자본(Capital)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생산에 이바지한다는 의미에서 자본으로 명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대체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등 여러 경제사회적 목표와 가치들이 사회적 자본 축적과 비례한다는 흥미로운 가설들에 대한 입증 연구들이 축적되고 있다.

정갑영․김동훈은 세계가치서베이(World Value Survey, WVS)와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등의 데이터 등을 활용하여 국가들의 사회적 자본에 대해서 분석하였다(사회적 자본지수의 계측, 2019, 한국경제포럼). 세부 지표들의 가중치를 두어 계산한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조사대상 72개국 중 21위, 표본 OECD 23개국 중에서 17위를 차지함으로써 낮은 편에 속하고 있다. 3대 지표 중 단체 가입 등을 의미하는 네트워크는 앞의 두 가지 지표, 즉, 신뢰와 사회규범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제외한 신뢰와 사회규범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신뢰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공적 신뢰로 나뉘는데 공적 신뢰는 다시 공공기관 신뢰, 즉 국회, 경찰, 사법제도 등에 대한 신뢰와 종교, 언론, 노조, 방송, 기업 등 사회기관에 대한 신뢰로 나뉜다. 한국 국민들의 신뢰도 평가 점수는 72개국 중 21위인데 특히 국회, 군대, 종교에 대한 신뢰가 각각 47, 46, 54위로 취약하여 공적 신뢰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규범 지표에서 한국은 규범인식과 부패인식 등 사적 영역이 법에 의한 지배 등 공적인 영역보다 뒤떨어져 있다.

이 논문에서 사용된 지표들 이외에도 사회적 자본의 측정과 비교를 위한 많은 데이터들을 찾을 수 있다. 규범 지키기와 관련하여 이해하기 쉬운 지표의 하나는 교통사고에 의한 보행자 사망자 통계로서 이 통계는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서 확인할 수 있다. OECD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통계에서 한국은 1980년대 대략 6위권에 머물다가 1980~1990년대 가장 많은 보행자 사망자 수를 기록하였고 그 이후 2018년까지 OECD 회원국 35개국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보행자 사망자수를 보이고 있다(매년 몇개 회원국의 통계 누락). 인구(미국 327, 일본 127, 한국 51백만명)와 자동차 보유대수를 감안하면 이 통계의 한국 순위는 더욱 나빠질 수 있다.

보행자 사망자 통계와 관련해서 교통 법규 및 문화, 인프라가 나라마다 다른 점 등 통계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WVS에서 인용된 통계들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설문에 기초한 서베이 데이터의 한계 등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세계은행(World Bank)의 사업하기 좋은 지수(Doing Business Index) 조사가 특정 국가에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는 내외신 보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기에 통계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다. 그러나 통계기준, 표본, 해석, 작성자의 오류 등 통계들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지만 모든 통계들을 무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애써 통계의 문제점들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통 크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한국의 신뢰와 사회 규범 지키기 지표에서의 낮은 순위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에서 우리의 리더들이 국민들이 벤치마킹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들이 있다. 부동산, 교육,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 정책들이 불신받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 1위의 우리 국민들은 메인 뉴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많은 부정적인 뉴스들을 즉시적으로 접하고 있다. 뉴스가치가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은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욕하면서 배운다는 우리 속담처럼 국민들은 사회에 대한 불신, 내가 아닌 상대방에 대한 부정, 그리고 규범 지키지 않기를 매순간 학습하고 있다.

국민들은 지도자들을 믿지 못하고 여러 부문에서 편이 나뉘어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대방이 잘못이라고 서로 대립하고 있으며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다. 노사는 협력하지 못하고 있으며 남녀, 지역 간의 갈등도 있다. 한 다리 건너면 서로를 알 수 있는 관계지만 나와 생각이 다르면 어느 직업이나 그룹이나 거의 예외 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적절한 비판은 건전한 경제사회 발전의 기본 요소이지만 서로가 대립하고 각 부문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규범 이탈의 사례로 회자되는 것은 국가 역량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대단한 듯 보였던 세계 경제는 코로나19가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지 2년도 안되어 지역경제로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경제도 약한 체계이고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쓰레기 더미에서 예쁜 장미꽃이 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불신과 규범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경제 의지가 결실로 이어지기 어렵다.

우리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에 둘러싸여 수천년을 견뎌 오면서 강한 경쟁력의 DNA를 이미 증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갈등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하여야 한다. 이제 국민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경제를 더 일으켜 세계에 힘차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여야 한다. 증오를 말하기보다 이해와 관용을 이야기하고 갈등보다는 협력을 논의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들이 한국을 다시 태어나고 싶은 자랑스러운 나라로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도록 긍정의 마인드로, 상호 신뢰의 분위기로 우리 스스로와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다음 세대에서는 오징어 게임 같은 영화의 소재가 한국이 아니어야 한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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