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은 해운기업 지원에 나선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과거 현대상선(현 HMM)의 적자 폭이 커지자 금융업계에서는 지원을 꺼렸다. 해운기업의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황 사장은 유일한 원양 국적선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해운업이 국가의 안보산업이라는 인식이 그의 단호한 결단을 도왔다.
최근 한국해양진흥공사 본사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한 황 사장은 마스크를 벗고 기자를 만났다. 백신을 접종해 괜찮다며 황 사장은 미소를 띠고 인터뷰에 응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벼랑 끝까지 몰렸던 한국의 해운업도 한시름을 돌린 상태다. 하지만 황 사장은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진단하며 방심하지 않았다. 해상운임 상승 등 다양한 운도 작용했다고 해운업의 턴어라운드를 겸손하게 자평했다. 임기 3년을 맞는 황 사장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됐다.
-초대 사장으로서 부임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부분과 환경적인 부분이 모두 작용해서 한국해양진흥공사에 초대 사장으로 오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국제경제를 전공했고 부산에서 오래 근무했다. 대외적으로는 해운업의 몰락이 큰 영향을 끼쳤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해운업이 10여년간 불황에 빠졌다. 2016년 한진해운이 파산하고, 민간의 선박금융은 이전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해운업이 워낙 불황이라 신조 발주나 투자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해운업이 몰락하는 걸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해운업은 전후방효과가 매우 크고, 국가경쟁력을 담보하는 안보산업이다. 해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해운의 몰락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다행히 해운업의 몰락 직전에 공사가 설립됐다. 부산 지역과 해운업의 몰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보탬이 되고 싶어 해양진흥공사와 함께했다."
-3년간 해운재건의 성과는?
"한국해양진흥공사는 해운 경쟁력 강화를 통해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난 2018년 7월 설립됐다. 지난 3년간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실질적 수행기관으로서 국적선사에 대한 금융지원, 구조개선, 해운정보제공 등의 정책사업을 3년간 추진했다. 그 결과 올해 4월 기준, 83개사에 5조8742억원을 지원했다. 우선 해운산업의 매출액이 크게 회복됐다. 해운산업 매출액은 2020년 기준 36조원으로 2017년보다 약 7조원 증가했다. HMM의 경우 지난해 10년간의 장기적자를 탈출, 1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렸다.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HMM은 올해 1분기 양호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SM상선도 지난해 1406억원의 영업이익을 시현하는 등 중견선사들의 영업손익도 공사 설립 전보다 개선됐다. 둘째로 원양 컨테이너선 선복량이 확충됐다. 2018년 발주된 3조1500억원 규모의 초대형컨테이너선 20척이 공사 보증 등을 통해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인도됐다. 선복량은 2020년 기준 80만TEU(2017년 대비 34만TEU 증가)를 기록하며, 국적 원양선사는 세계 7위권의 선복량을 회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국제수지 개선에 기여했다. 최근 해상운임 상승세와 초대형선 등 신조선박 발주 효과로 해운산업은 고효율·저비용 구조로 체질개선이 이뤄졌다. 이로 인해 지난해 10년간 적자이던 해운지수가 흑자로 돌아서며, 국제수지 개선에도 기여했다."
-해운재건의 결정적 역할이나 승부처가 된 부분이 있다면?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이후 금융기관의 건전성 문제가 굉장히 심했고, 자기자본비율(BIS) 규제와 바젤협약 등으로 조선·해운사의 경영환경이 악화했다. 게다가 은행권도 경기변동에 민감한 조선·해운사에 대출을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공사가 설립되면서 어려운 역할을 떠맡아 다양한 지원이 이어졌다. 선박 발주의 기반을 만들었고, 향후에도 흔들림 없이 선사를 지원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지원 체계를 바탕으로 지난해에는 HMM이 세계 3대 해운동맹인 디 얼라이언스(THE Alliance)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글로벌 선사 간 협력체계도 구축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항만체선 현상이 이어지면서 운임 상승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사의 선제적 정책 지원이 있었기에 이러한 환경적 변화가 맞물리면서 영업호황이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다만, 최근 양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국적선사의 재무구조 개선이 아직은 진행 중이다. 또한 운임상승세의 지속 여부, 향후 선박 인도량 변화 등을 지켜보면서 대응할 방침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ESG 경영이 화두다. 공사의 경영전략은?
"최근 기후와 환경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고, 특히 해양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로 선박의 황산화물 탄소 배출규제 등 해양 환경규제가 날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공사는 노후선을 친환경선박으로 조기 대체하기 위한 국고 보조금 지원 및 친환경설비 설치자금 특별보증을 제공하고 있다. 선사가 별도의 담보 없이 저금리로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누적 지원금만 4934억원에 달한다. 또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기 위한 상생협력사업은 설립 이래 추진하고 있다. 예시로는 부산국제금융진흥원 설립과 부산사회적경제지원기금 출현 등이 있다. 부산국제금융진흥원을 통해 해양금융특화 기반을 조성함과 동시에 신규 일자리 창출 및 지식산업육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9개 공공기관과 함께 출연한 부산사회적경제지원기금(BEF)으로 지역의 사회적 경제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직·간접 고용창출은 물론 지역의 제조, 유통, 연구개발(R&D)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위해서는 공사 출범 이후부터 비상임이사 지원체계 마련을 통한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했다. 또 독립성과 신뢰성을 갖춘 인권경영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해양진흥공사의 중장기 중점 추진사업은 무엇인가?
"국적 원양선사의 세계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HMM이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지만, 누적된 손실을 만회하고 금융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공사는 HMM이 스스로 시장에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정도의 신용을 회복하도록 재무 건전성과 글로벌 네트워크 영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지속할 것이다. 또한, 국적 원양선사와 연근해 컨테이너선사들에 대해서도 자생력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선복과 항만물류시설 등 핵심자산에 대한 금융 등 지원을 이어갈 전망이다. 대형선사를 지원하면서 미처 돌보지 못했던 중소형 선사들도 합리적인 지원으로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한국형 선박 조세리스 제도를 도입해 선박금융 참여자의 인센티브를 확보하고, 정책금융기관과 공조해 신조프로젝트도 꾸준히 추진할 구상을 하고 있다. 선·화주 간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고 상생협력을 위한 우수선화주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신뢰성을 바탕으로 한 장기운송계약도 유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해양산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 전환을 꾀할 방침이다"
※ 황호선 사장 약력
△1952년 부산 △1971년 경남고 △1980년 서울대 철학과 △1996년 미시간대 경제학박사 △1997년 아주대 세계지역연구센터 연구위원 △1999~2017년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2003~2004년 대통령자문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 △2003~2007년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 △2003~2006년 사단법인 시민사회연구원 초대 원장 △2004~2005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부산진해특별위원회 위원 △2005~2009년 경제자유구역위원회 민간위원 △2005~2007년 전국지역혁신연구회 회장 △2006~2008년 부산 경제정의실천연합회 공동대표 △2009~2013년 사단법인 시민사회연구원 이사장 △2018년 7월~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