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뇌관인 일본 전범기업의 현금화 가능 시점이 20일 현재 보름 내로 다가왔다.
지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로 국내에 압류된 일본 전범기업 자산은 사법 절차에 따라 내달 4일부터 매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현금화 명령이 실제로 떨어지면 일본과의 관계 악화가 뻔하지만, 정부는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 상황에 처했다.
현금화라는 '시한폭탄'을 앞둔 상황에서 정무적 해결 대신 감성적 접근이 적절하냐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한·일 외교국장급협의, 이달 중 안 열릴 듯
20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일 양국은 매달 열기로 한 외교국장급 협의를 이달 중에 개최하지 않을 예정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달 중에 (협의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아직 계획을 잡지 못했다"며 "주한 일본대사관과 꾸준히 소통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양국 외교국장은 지난달 24일 화상회의 방식으로 협의를 진행했지만,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여느 때처럼 서로의 입장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들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고 반발, 해결책을 요구하면서 지난해 7월 대한(對韓) 수출 규제 강화에 나섰다.
소송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들은 대법원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국내 자산을 모두 압류당했다. 다음 달 4일을 기점으로 이들 자산의 매각, 즉 현금화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 속 매달 정례화된 외교국장급 협의마저 열리지 않으면서 양국 외교채널 소통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양국은 내달 4일 현금화 가능 시점이 도래하는 데 이어 같은 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시한 종료도 앞뒀다. 그 사이 15일 광복절 등 갈등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양국 모두 현금화는 피하기 어렵다고 보는 상황"이라며 "자산 매각 명령은 빠르면 연내 또는 길면 내년까지 갈 수도 있다. 그 사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교체되거나 일본에서 총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있는 등 정치적 변수도 여러 가지"라고 진단했다.
외교부, 한·일 국민 미담 수집...'감성적 접근' 비판도
이 가운데 한·일 외교당국 간 이뤄지는 유일한 가시적 교류가 양 국민 사이 미담 공모전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커진다.
외교부 공공외교문화국 정책공공외교과는 지난달 24일부터 오는 31일까지 '한·일 나의 친구, 나의 이웃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의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참가대상은 한·일 양 국민 모두로, 한·일 간 미래지향적인 우호 관계 발전에 기여한 미담이면 모두 접수 가능하다.
이번 공모전은 당초 양국이 올해로 국교를 정상화한 지 55주년이 된 것을 기념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발전을 지향하기 위해 기획됐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최근까지 이어져 온 양국 관계 악화 등을 고려해 '한·일 국교 정상화 55주년' 등 설명은 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정무적 활동에 나서기보다도 감성적 접근만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교소식통은 "양 국민 간 미담 사례를 찾는 것은 순간 들었을 때 좋은 사업 방향"이라면서도 "악화된 한·일 관계를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 생각했을 때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8월에 현금화와 지소미아 등 어마어마한 시한폭탄이 기다리고 있는데 보이는 조치는 이런 감성적인 조치뿐"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외교부는 해당 사업이 공공외교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일 양국 관계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민간 차원 협력 등은 잘해나가자는 취지에서 추진하게 됐다"면서 "양국 사이가 나쁘다고 해서 관계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미우나 고우나 옆에 있는 이웃국가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어 교류가 활성화될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