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동맹국에만 수출하고 나머지 국가에는 금지하거나 상한선을 두는 수출통제를 계획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확보 저지에 총력을 기울여 온 미국이 AI 칩에 대한 수출통제 범위를 사실상 전 세계로 확대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한국은 동맹국으로 예외를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8일(현지시간) 바이든 행정부가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AI 반도체의 판매를 국가별, 기업별로 제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퇴임을 며칠 앞두고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의 AI 반도체 수출에 대한 추가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며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손에 첨단 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마지막 단계”라고 짚었다.
반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벨라루스, 이라크, 시리아 등 미국의 적대국들은 미국산 반도체 수입이 실질적으로 막히게 된다. 나머지인 세계 대부분 국가는 수입할 수 있는 총 연산력에 상한이 설정되지만 미 정부가 제시한 보안 요건과 인권 기준을 따르기로 동의하면 상한선보다 많은 양의 반도체를 수입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에 AI를 안전한 환경에서 개발하고 사용하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기업 그룹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지금까지 미국의 AI반도체 수출 통제는 중국 등 일부 국가로만 이뤄졌는데,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반도체 수출통제가 전 세계로 확대되는 셈이다. 바이든 정부는 수년 전부터 중국 등에 대해 엔비디아나 AMD 등 업체들이 만든 첨단 반도체 판매를 제한하는 한편, 이들이 중동과 동남아 등에서 중개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미국 기술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새로운 수출규제를 도입하는 데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규정을 활용할 계획이다. VEU는 미 정부가 사전에 승인된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에 대해 수출을 허용하는 일종의 포괄적 허가다. 미 정부가 2023년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면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는 예외를 허용할 때도 VEU 규정을 활용했다. 이번 수출 규제는 이르면 10일 발표될 전망이다.
AI 반도체 선두주자인 엔비디아는 반발했다. 엔비디아는 블룸버그에 보낸 성명에서 “세계 대부분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막판 규정은 (AI 반도체) 남용 위험을 줄이기는커녕 경제 성장과 미국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중대한 정책 전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도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SIA는 성명을 내고 “이 정도 규모와 중요성을 가진 정책 변경을 대통령직 인수 기간에 업계의 의미 있는 의견 수렴 없이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숙고하는 절차를 피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다”며 “미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