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투어웨이] "한국오픈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

202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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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한국오픈이 취소됐다. 소식을 접한 곳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챔피언십이 열리던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 2라운드가 끝난 오후 5시경 골프를 담당하는 기자들에게 대한골프협회(KGA)의 이름으로 보도자료가 날아왔다. 미디어센터를 떠나려던 기자들은 짐을 풀고 노트북을 열었다. 전체 내용은 단 192자. 조금만 더 짧았으면 140자 제한(한글)인 트위터에도 올릴 수 있는 정도의 분량. 만감이 교차했다. 여자 프로골프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 남자 프로골프는 192자에 움츠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한국오픈의 취소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회는 내셔널 타이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즉 '국가를 대표한다'는 뜻이다. 미국으로 치면 US 오픈, 영국으로 치면 디 오픈 챔피언십과도 같은 존재다. 1958년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62년을 줄곧 내달렸다. 1996년부터는 후원사가 함께 했다. 코오롱이다. 1998년을 제외하고 24년을 버팀목처럼 지탱해줬다.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3월 13일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팬데믹(범유행) 선언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치러진 큰 골프 이벤트는 총 4번이다. KLPGA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현대카드 슈퍼매치 고진영 vs 박성현, E1 채리티 오픈에 이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스킨스게임 2020까지. 완벽한 코로나19 대응은 해외 골프대회 관계자들에게 귀감이 됐다. 기자에게도 아시아에 속한 협회와 기자들의 자료 요청이 쇄도했다. 'KLPGA 코로나19 대응 매뉴얼'과 현장 사진을 쉼없이 날랐다. 일본·인도·중국·인도네시아에서 성공적인 개최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우리는 아시아인들에게 "코로나19 속에서도 골프대회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지난달 29일 최호성(47·까스텔바작)과 만났다. 그는 2018년 한국오픈에서 '낚시꾼 스윙'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다. 유명세를 타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유러피언 투어를 누볐다. 당시 그에게 한국오픈 취소 소식을 전했다.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회인데…"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아시아 기자들에게 인터뷰 내용을 전달했다. 이번엔 원성이 자자했다. "한국오픈 취소는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일 열린 KPGA 스킨스게임 기자회견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벤트 대회에 출전한 문경준(38·휴셈)과 박상현(37·동아제약)은 남자 프로골퍼를 대표한다. '대회가 없는 현 상황'에 대한 질문에 문경준은 씁쓸한 표정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언급했고, 박상현은 울컥하며 "실직자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한국오픈은 골프대회의 의미를 넘어선다. 남자 프로골퍼들의 삶의 터전이자, 해외 진출의 교두보이며, 국내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대회로 손꼽힌다. 구자철 KPGA 회장은 최근 KGA에 한국오픈 취소 결정에 대한 재고를 요청했다. 남자 프로골프의 CPR(심폐소생술)을 위해서다. 한국오픈은 남자 프로골프의 심장이다. 상금이 적어도 좋다. KGA 단일 주관도 좋다. 일단 살리고 보자. "한국오픈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
 

[사진=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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