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공식 취임도 하기 전에 ‘관세의 칼’을 빼 들었다. 펜타닐 유입과 불법 이민 문제 대응을 명분으로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공식화한 것이다. 트럼프가 취임 첫날부터 관세 폭탄을 퍼붓겠다고 예고한 것은 ‘미국 우선주의’ 원칙을 한층 공고히 하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무역에서 흑자를 내는 한국 등 몇몇 국가들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25일(이하 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취임 첫날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제품에 대해서도 10%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멕시코와 캐나다를 통해 범죄와 마약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다면서 이런 행위가 중단될 때까지 관세를 매기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 후 멕시코 페소와 캐나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은 출렁였다. 중국의 관세 맞대응 여부에 따라 글로벌 무역 시장으로도 충격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이날 발표한 관세 부과 방침은 대선 당시 관세 공약과는 별개다. 그는 선거운동 때부터 주요 공약으로 수입품에 보편관세 10~20%, 중국산 수입품에는 관세 60% 부과를 주장해 왔다. 특히 중국 업체가 멕시코에서 생산한 자동차에 대해서는 100~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이런 관세 부과의 이유로 미국 노동자 보호와 제조업 부흥, 자동차 산업 보호 등을 거론했다.
캐나다, 멕시코, 중국은 미국의 3대 교역국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2년 수입 기준으로는 중국이 전체 중 14.6%(5363억 달러)로 1위다. 이어 멕시코(4548억 달러), 캐나다(4366억 달러) 등 순이다. 이들 3개국은 올해 9월까지 전체 미국 수입의 42%를 차지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AP통신은 “이번 관세가 시행되면 휘발유에서 자동차,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미국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거의 모든 제품 가격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관세 ‘전가의 보도’로 활용하나
미국의 3대 수입국에 대한 전면적인 새 관세 도입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트럼프가 집권 2기에 관세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키스퀘어 그룹 창업자인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 지명자는 지난 15일 폭스뉴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관세는 대통령의 외교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맹국이 자주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유도하거나, 해외시장을 개방하거나, 불법 이민 종료 및 펜타닐 밀수 단속에 대한 협력을 확보하거나, 군사적 침략을 억제하는 등의 목적에서 관세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서도 역대 최대 수준인 대미 무역 흑자 개선을 압박하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등 더해 관세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는 최근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자판기)'으로 부르며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약 14조원)를 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금액은 최근 한·미 양국이 합의한 방위비 분담금 규모보다 9배 이상 많은 수치다. 다만 이번에 발표한 관세 공약이 그대로 시행될지 아니면 취임 전에 협상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인지는 불투명하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중국 매체들은 트럼프의 관세 부과 예고에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냈다. 중국 경제매체 재련사는 “트럼프가 또다시 관세 몽둥이를 휘두른다”고 비난했다. 중국 매경망도 트럼프의 발언을 ‘망언’이라고 했다. 중국중앙TV(CCTV)는 전미소매협회(NFR) 보고서를 인용해 “트럼프의 관세 공약이 이행되면 매년 미국 소비자의 구매력이 최대 780억 달러(약 107조6000억원)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