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기업가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라

2020-02-1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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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드러나고 있는 법원의 행태가 한국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뼈대를 다시 한 번 비틀고 있다. 파기환송으로 죄상이 무거워진 이 부회장의 형량을 파기환송 이전과 같은 집행유예 수준으로 짜맞추려는 사법부의 ‘꼼수’가 한국경제의 제도적 정상화를 다시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한국경제의 성장과정에서 오랜 신화이다. 이미 경제개발 초기부터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 이 신화는 2005년 당시 재정경제부가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는  전경련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삭제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와 유사한 행태는 비단 한국경제만의 문제는 아니고 자본주의 일반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과 루이지 징갈레스는 2003년 공동 집필한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에서 건전하고 경쟁적인 금융시장이 기회 확산과 빈곤 퇴치, 또는 ‘창조적 파괴’를 달성하는 데 가장 유력한 수단이지만 그것이 갖는 내재적 결함을 교정하기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다소 진부한 주장을 폈다. 이 주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발과 함께 다분히 제목 때문에 새삼 주목을 받았다. 선진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와 한국의 ‘기업가로부터 기업 구하기’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적어도 시장경제가 정착된 환경에서 대체로 시장규칙에 따르는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에 대한 거시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면, 한국에서는 시장경제의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자행되는 기업가들의 반기업적 행태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기업가의 치부를 현행 공정거래법은 ‘사익편취’로 규정해 제재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정부 스스로 ‘기업’과 ‘기업가’를 동일시하는 행태를 많은 경우에 묵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비호하기도 한다. 이때 헌법 제119조 ①항에 의해 존중되는 것이 ‘기업가’가 아니라 ‘기업’의 자유와 창의라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한국에 특유한 가족중심경영의 문화도 ‘기업’과 ‘기업가’가 동일시되는 관행을 부추기고 있다.
작금의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으로 ‘기업’과 ‘기업가’를 동일시하는 관행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제의 발단은 대법원이 인정한 뇌물액수가 86억원이 되면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3년을 초과하는 형량의 선고가 불가피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에 재판장이 직접 나서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감형 사유로 적극 개발해 주면서 재판부와 변호인이 일체화되는 기이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의 이러한 궁여지책이 필요한 이유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감형사유로 내세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재판과정 내내 삼성 변호인단이 편 논리는 뇌물 등 범죄행위에 대해 이 부회장은 알지 못했으므로 무죄라는 것이었다. 이 무리한 주장은 역으로 삼성 경영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로 변할 수 있다. 또한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되어 있는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꾸준히 올랐기 때문에 이 부회장의 존재감은 더욱 미미해졌다. 그래서 새로운 변호 논리가 필요했고 이를 재판부가 개발해준 셈이다.

재판정 밖에서도 ‘이재용 구하기’는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 7월 삼성전자 인도 공장 준공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이후 2019년 3월에는 시스템반도체 비전선포식에 참석했다. 마침내 2020년 2월 "대기업이 너무 잘해주고 계신다"는 대통령의 극찬과 "고용문제는 직접 챙기겠다"는 이 부회장의 다짐이 맞교환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사이 노조와의 거리는 멀어졌고 ‘노동 존중’의 가치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고 ‘경제활력’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국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던 ‘규제개혁 3법’이 2018년 9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되더니 2020년 1월에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되어 경총 회장이 미국 출장 중에 춤추는 상황이 벌어졌다. 시민사회에서는 야당이 합세한 ‘국기부대’의 세가 확산되면서 급기야 외형상 촛불혁명군에 맞먹는 규모로 성장하자 대통령이 나서 ‘국론분열’을 사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진전되는 ‘재(再)보수화’에 사법부가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판결은 지난 2년 동안의 역주행을 멈추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억지스러운 선처가 내려진다면, ‘기업’과 ‘기업가’를 동일시하는 잘못된 관행은 ‘기업가’에게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심화될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경제에서 ‘사익편취’의 관행이 더욱 공고해진다면, 한국의 취약한 시장경제는 더욱 ‘부패한 자본주의’(라잔·징갈레스)에 접근할 것이다. 기업가에 의한 기업의 ‘약탈’이 사라진 경제가 건전한 시장경제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은 한국경제가 어떤 경제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방향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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