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무엇인가요?

2020-02-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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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시장에 돈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액은 4조300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벤처투자가 확대되면서 스타트업 투자자와 창업자간 계약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건부지분인수계약도 그 중 하나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공포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촉법)’에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 국내법상 최초로 규정됐습니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 : 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이 뭘까요.

이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가치(Enterprise Value)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투자자가 A라는 스타트업에 1억원을 투자한다고 가정해 보죠.

A사의 기업가치가 10억원이라면 투자자(1번)는 1억원을 투자해 10%의 지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후속 투자자(2번)가 등장했습니다. A사는 고객 수를 늘려 성장가능성을 입증했고, 기업가치를 20억원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경우 2번 투자자는 같은 돈을 투자해 5% 지분만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기업가치는 투자자와 창업자(기존 주주들 포함)가 협상을 통해 정합니다. 시장점유율이 증가하고, 성장가능성을 입증하면 기업가치는 올라갑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는 기업가치가 떨어지겠죠.

보통 스타트업은 후속투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를 높입니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1인 창업으로 시작한 기업이 팀원을 갖춰 서비스를 선보이고, 회원을 늘리면서 조금씩 사업성을 입증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낮은 기업가치에서 적은 투자금으로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기업에 투자할 때도 그 기업의 가치를 낮춰야 많은 지분을 얻을 수 있는 셈입니다.

반면, 창업자가 자신의 지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업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유리하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업가치 협상 결과에 따라 투자자와 창업자의 희비가 갈리기도 합니다.

투자자가 스타트업 성장성을 기대한 나머지 기업가치를 높게 배팅했는데 사업 진척이 없을 수도 있고, 반대로 너무 낮은 기업가치로 투자받아 지분을 과도하게 떼어 준 창업자도 있습니다.

언제나 불확실성은 줄이는 것이 좋겠죠.

투자자와 창업자 모두 서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입니다.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은 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인 기업가치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후속투자를 유치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예를 들어, 1번 투자자가 A라는 스타트업에 1억원을 투자하는데 이 때 기업가치를 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분도 확정하지 못하겠죠. 그 대신 후속투자자와 산정한 기업가치의 80%(할인율)를 인정하기로 계약을 맺습니다.

시간이 흘러 1억원을 투자하겠다는 2번 투자자가 등장하고, 기업가치를 20억원으로 인정합니다.

이 때 1번 투자자는 20억원에 할인율을 적용해 16억원의 기업가치를 확정합니다. 투자 시점은 과거지만, 후속투자를 유치할 때 비로소 1번 투자자 지분의 기준이 될 A사 기업가치가 정해지는 거죠.

앞선 사례와 비교해볼까요?

창업자는 동일하게 2억원을 투자 받지만, 첫 번째 사례에서는 지분 15%(10%+5%)를 배분했고 두 번째 사례에서는 11.25%(6.25%+5%)만 줬습니다. 3.75%의 지분을 지켰죠.

1번 투자자 입장에서도 따져보겠습니다. 원래 10억원 기업가치로 협상해 1억원을 투자하면 10%의 지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통해 지분이 6.25%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손해만 본 것은 아닙니다. 투자 당시에 기업가치를 산정하는데 드는 비용을 아꼈고 고평가의 불확실성을 줄였으니까요. 당장 내일의 사업도 예측하기 힘든 스타트업은 가치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투자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경우 지나치게 높아진 몸값으로 후속투자가 어려워지고, 자금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1번 투자자는 확보 지분이 줄었지만, 투자 당시에 기업가치를 분석하는데 드는 비용을 아꼈고, 고평가 리스크를 줄인거죠.

결과적으로, 기업가치 측정이 어려운 초기창업기업은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이용해 투자자와 피투자자 모두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장점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지난 1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19년 벤처투자 실적 및 2020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


이러한 계약 형태는 과거부터 존재해 왔지만, 마땅한 근거규정이 없었습니다. 이번 벤촉법 통과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벤촉법에는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을 투자로 인정하는 근거만 제시돼 있지만, 2월말~3월 중 세부 계약방식 등을 규정한 시행규칙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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