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3일(현지시간) 총선 유세 자리에서 디지털세 도입 방침을 재차 밝혔다. 대상은 글로벌 매출이 5억 파운드(약 8000억원) 이상이고 영국 내 매출이 2500만 파운드가 넘는 디지털 기업이다. 영국 내 매출 중 2%를 세금으로 걷겠다는 계획이다.
이튿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인터넷 시장을 보유한 인도네시아가 현지 전자상거래 사업을 전개하는 해외 업체에 세금을 물리는 새 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캐나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잇따라 다국적 인터넷 공룡에 대한 나름의 과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IT 공룡에 대한 세금을 물리는 방법을 실행 중이거나 검토하는 나라는 20여 개국에 이른다고 FT는 집계했다.
거대 기술기업들은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등 우호적인 조세 환경을 갖춘 곳에 본사를 두고 세금 부담을 회피하며 현행 과세 제도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런 식으로 다국적 IT 공룡들이 피하는 세금이 연간 1000억~2400억 달러(약 119조~28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디지털세가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의 대표 기술 공룡들을 부당하게 표적으로 삼는다고 항의하고 있다. 미국이 2일 디지털세를 도입한 프랑스에 대한 보복으로 와인과 핸드백 등 연간 24억 달러어치 프랑스산 수입품에 최고 1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이유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4일 OECD에 서한을 보내 디지털세는 "미국에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OECD가 성공적으로 다자간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모든 국가들이 디지털세 도입을 유보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세의 다자간 합의가 추진되기도 했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미국 인터넷 공룡에 유럽 전역 매출의 3%에 해당하는 세금 부과를 논의했으나 미국의 보복을 우려한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 등이 반대해 불발됐다.
OECD는 내년을 목표로 디지털세 권고안을 마련하고 있다. 과세권을 회사의 물리적 거점이 있는 국가가 아니라 매출을 올리는 국가에 부여하는 게 골자다. 이 같은 방안은 현재 20개국 재무장관 회담의 의제로 제출돼 논의를 진행 중이며, G20 재무장관들은 내년 6월까지 정치적 합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업계 관계자들은 OECD 다자간 논의를 통해 개별 디지털세 부과가 유예되길 바라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산업협회(ITI)의 제니퍼 맥클로스키 부회장은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앞으로 무역분쟁이 더 심화할 공산이 크다. 모두가 손해로 가는 상황이 열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프랑스에 보복관세를 위협한 건 현재 OECD에서 다자간 논의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있다고 FT는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