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천하'로 끝난 윤석금 회장의 꿈

2019-10-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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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털 개념 선보이며 승승장구…재계 30위권 진입하기도

극동건설 무리한 인수 이후 만성적 재정 위기 시달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종로구 종로플레이스에서 코웨이 인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승부수가 석달만에 실패로 끝났다.

웅진은 국내 최대 모바일 게임사 넷마블에 웅진코웨이를 재매각키로 했다. 재계에서는 과거 잘못된 투자 결정이 아직까지도 그룹 경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14일 웅진코웨이의 최대주주인 웅진씽크빅은 이사회를 열고 매각 우선 협상 대상자로 넷마블을 선정했다. 넷마블은 웅진씽크빅이 보유한 웅진코웨이 지분 25.08%를 1조8000억원대에 인수할 전망이다.

◆ '창립 30주년' 웅진코웨이, IMF 계기로 렌털 시장 선도

올해 30주년을 맞은 웅진코웨이는 이번 재매각으로 설립 이후 세번이나 주인이 바뀌게 됐다.

웅진코웨이의 전신은 윤 회장이 1989년 설립한 한국코웨이다. 정수기를 주력 품목으로 내세우며 승승장구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암초를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윤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생소했던 렌털 개념을 시장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창고에 가득 쌓인 재고를 보면서 차라리 대여를 통해서라도 수익을 창출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윤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고가의 정수기를 매달 일정 금액만 내고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기적인 사후 관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들의 호응도 높았다.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 응대에도 일일이 점수를 매겼다. 목소리의 느낌이나 통화가 연결되기까지의 벨소리 횟수까지 체크했다.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기존 사고에만 머물렀다면 지금 웅진코웨이 매출은 2000억원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렌털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를 이처럼 회고하기도 했다.

윤 회장은 100만원대 고가 정수기의 렌털료를 월 2만7000원으로 정했다. 치밀한 원가 계산 끝에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과장급 직장인이 맑은 물을 마시는 데 이 정도는 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직관을 중시하는 이러한 그의 경영 스타일은 훗날 사업 다각화 과정에서 독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웅진은 한때 출판(웅진씽크빅)과 식품(웅진식품), 정수기(웅진코웨이) 사업을 세 축으로 재계 30위권으로 진입했다. 탄력을 받은 윤 회장은 기존 서비스업 중심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다양한 분야로 진출을 꾀했다. 웅진에너지와 웅진케미칼, 서울저축은행 등이 당시 인수하거나 설립한 업체들이다.

◆ 극동건설 인수 후폭풍으로 법정관리까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2007년 6월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극동건설을 6600억원에 인수하면서 부터다. 기업 가치가 크게 하락한 극동건설을 시장가격의 세 배가 넘는 웃돈까지 지불하며 무리하게 사들인 것이다.

결과는 비극이었다. 1년 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금융 시장의 불황과 함께 건설경기도 침체됐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4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했지만 끝내 극동건설의 부도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약 1조원이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한 순간에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은 2012년 9월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회생 과정에서 윤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알짜 계열사들을 하나둘씩 매각했다.

2013년 웅진코웨이를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에 매각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과 11월 웅진식품과 웅진케미칼을 각각 한앤컴퍼니와 일본 도레이첨단소재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윤 회장은 검찰로부터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를 당하기도 했다.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알짜 계열사를 이용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했다는 이유다. 다만 사적 이익추구가 아닌 경영 정상화 차원이었다는 점이 인정돼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웅진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 기업들 사이에 보다 정밀한 실사 작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 와신상담 끝에 재인수…이번에도 재무 위기가 발목

웅진은 와신상담 끝에 1년 4개월만인 2014년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재건에 시동을 걸었다. 태양광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웅진코웨이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렌털 사업(웅진렌탈)도 새로 시작했다.

그러나 윤 회장은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졌던 웅진코웨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총 738만개의 렌털 계정을 보유한 안정적인 수익 창출 능력도 매력적이었다. 지난 3월 1조7000억원을 들여 웅진코웨이를 다시 사들인 이유다.

하지만 "코웨이를 기필코 성공시켜 사업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전례를 보여주겠다"는 윤 회장의 각오는 석달만에 실패로 끝났다. 전체 인수대금 중 80%를 빚으로 끌어오면서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2007년의 실수를 재현할 수 있다는 판단에 윤 회장은 웅진코웨이를 매물로 내놓고, 매각 대금을 통해 모든 부채를 정리키로 결정했다.

현재 웅진과 넷마블은 세부 사항을 협의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내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연내 계약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평사원에서 중견그룹 회장까지 오른 윤 회장의 '성공 신화'가 거듭된 최근의 거듭된 실패로 빛이 바랬다는 말들이 나온다. 무리한 인수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윤 회장은 물론 이사회에도 경영실패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윤 회장의 가시밭길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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