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스페셜 칼럼] 오면초가(五面楚歌)의 한국

2019-09-02 06:00
  • 글자크기 설정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한국의 외교안보 상황은 오면초가(五面楚歌)에 처해 있다는 말이 유행이다. 그만큼 현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다. 미·중 전략경쟁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 가열되고 있다. 이제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진입했다고도 한다. 미국은 ‘미국 우선’을 선언하면서 경제이익 극대화에 나서고 있다. 한·미 동맹에 대한 존중은 찾기 어렵다. 일본은 한국을 우호국가 명단에서 배제해 버렸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 경제발전의 목줄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거의 준 군사동맹을 맺고 미·일 동맹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은 이 시점에서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한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지만 우리는 방어할 수 없는 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들을 연일 쏴 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그간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토대를 제공해왔다. 이제는 미국 스스로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현 질서체계로는 중국과 경쟁을 더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간 과소평가한 중국의 부상이 너무 빠르고, 4차 산업혁명의 추진과정에서 권위주의 정부가 오히려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이제 스스로 주도했던 경제 가치 사슬에서 중국을 끊어내려 하고 있다. 미국의 주도권을 유지할 새로운 세상을 다시 수립하기를 원한다. 한국의 안보와 경제는 더 이상 미국과 일본을 추종하던 요람의 시기에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안미경중’의 세계도 유지가 어렵다. ‘안정과 질서’를 제공하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사라지는 공간에 ‘민족국가’ 체제만 남는 것은 ‘정글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강대국이 아닌 중견국이나 주변국들은 더욱 왜소해지고 주변화되는 세계에 직면한다.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 시기 지정학적으로나 외교·안보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한·미동맹에 대한 무조건에 가까운 의존이 얼마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 그 심연을 알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런다 할지라도 트럼프가 동맹을 얼마나 중시할지도 미지수이고 청구서만 더 날아올 가능성이 크다. 한·일관계 악화 역시 미·중 전략경쟁과 트럼프 변수에 대한 아베의 ‘자력구제’ 구상으로 보여진다. 아베는 우리의 노력 여부를 떠나 '평화국가'라는 제약을 극복하려고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기존의 사고·방식에 의한 한·미동맹이나 한·일관계의 복원을 외치는 것은 속절없어 보인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희망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동양의 지혜는 ‘위기’가 기회를 수반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어찌 보면 미·중 전략경쟁은 타성에 젖어 있던 한국의 외교·안보·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제와 기술 발전 속도에 속수무책이던 한국 경제에 미·중 전략경쟁은 약간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 역시 자국 중심(중국 특색)의 발전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고, 지역 경제와 다자 협력에 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중 거대 국가들의 상호 끊어내기(decoupling)는 한국 기업들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정치·경제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대외 의존형이었던 외교·안보 분야는 스스로 생존 전략을 기획하고, 자주적인 태세를 강화할 기회가 주어졌다. 북한과 장기 ‘대항적’ 상황에 직면해 있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다행이다.


우리와 잠재적인 갈등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거나 무력갈등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요원하다. 북한은 우리가 방어할 수 없는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방어에 취약하다. 그리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경제력과 무장태세에는 태부족이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생존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 지나친 두려움과 조급증을 가지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 나가면 된다. 당장의 안보 근심인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한 반격 역량을 확보하면, 북한이나 주변 강대국들의 압박에도 향후 보다 유연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미국과 협상해 폭탄 중량 제한을 해제한 것은 그 첫걸음이었다. 미사일 전력은 우리가 질과 양에서 앞선다. 문 정부는 북핵과 대북 대비태세에 대한 국민들의 안보불안에 명쾌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가진 것을 잘 활용해도 이는 실제 가능한 일이다.

미·중 전략경쟁 시기에 그 변화들을 잘 관찰하면서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권고한다. 미·중 역시 그 어느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축소 지향’과 ‘위축’보다는 ‘확대 협력’으로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를 헤쳐 나가야 한다. 우리와 같은 처지의 국가들이 거의 대다수이다. 이들과 공감대와 협력을 강화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선택 사안이 아니다. 대체할 수 없는 귀한 대외자산이다. 그리고, 유사 정글의 시기에 일본을 포함한 모든 주변 국가들과 각자의 생존공간을 추구하면서 공존하는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하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부분은 국내 역량의 강화이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지도자들은 부끄럽지 않고, 제도가 정비되고, 문화적으로 우수하며, 계층과 지역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미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있어 그리고 K-팝을 통해 그 저력을 증명한 바 있다. 지혜를 모아보자. 이런 나라를 그 누가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