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시론] 등잔 밑에 숨은 금융지주

2019-08-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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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숟가락도 안 보일 수 있다. 등잔 밑에 떨어진 바늘 찾기는 더 어렵다. 바느질로 먹고사는 가족이 밤새도록 바늘 하나를 못 찾았다. 박수미 작가가 펴낸 '초등 선생님이 뽑은 남다른 속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책에는 백제 개로왕 이야기도 실려 있다. 개로왕은 고구려에서 온 승려 도림을 아꼈다. 왕은 바둑 친구인 그와 국사까지 논했다. 고구려 첩자인 그는 개로왕을 속여 도읍은 물론 목숨마저 빼앗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 그대로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생긴 등잔 밑도 있다. 한 세기가량 믿고 돈을 맡겨온 은행 행우회 이야기다. 조흥은행 행우회는 1925년 경성흥산을 만든다. 경성흥산은 70여년 후에 일어난 외환위기에도 살아남았다. 이제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으로, 경성흥산도 신한서브로 바뀌기는 했다. 신한금융지주가 일감을 대주는 신한서브는 예금통장도 인쇄하고, 은행점포도 지키고, 고객센터도 챙긴다. 신한은행에서 일했던 사람만 신한서브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이 늘어나는 만큼 등잔 밑도 늘어났다. 대한천일은행 행우회는 1930년 대창흥업을 세운다. 다시 대한천일은행은 우리은행으로, 대창흥업도 우리피앤에스로 바뀌어 지금까지 영업한다. 우리피앤에스도 신한서브처럼 우리금융지주에서 먹여 살린다. 마찬가지로 전직 행원만 요직에 앉아 있다. 조흥은행은 1897년 우리 돈으로 처음 세운 근대식 은행이다. 대한천일은행은 2년 후인 1899년 만들어졌다.

도리어 등잔 밑은 광복 후에 더 어두워졌다고 생각한다. 신한금융지주 지배주주는 재일교포 자본일 것으로 짐작돼 왔다. 회사는 현재 이사회 구성원 11명 가운데 40%에 가까운 4명을 일본에 사업장을 가진 경영자로 채웠다. 히라카와 유키와 박안순, 김화남, 최경록 사외이사는 회사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회장·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속해 있다. 신한금융지주가 생긴 이래 금융당국으로부터 대주주적격심사를 받은 적은 없다. 금융지주법이나 은행법에 따르자면 경영권을 가지려는 자본은 심사를 받아야 한다. 법으로는 못 살피는 사각지대가 나라 밖에 생기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나란히 빅4로 불리는 하나금융지주에도 들여다볼 구석이 있다. 하나은행 행우회가 세운 두레시닝에는 하나금융투자도 출자했다. 금융지주 계열사가 직접 행우회 자회사에 돈을 대는 일은 드물다. KB금융지주 자회사인 KB국민은행 행우회는 인력회사 KB한마음을 만들어 명예퇴직자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KB한마음 전 경영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불법사찰'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술 더 뜨는 곳은 국책은행이다. 한국은행 행우회는 기념주화를 파는 서원기업을 세웠다. 역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행우회도 두레비즈를 만들었다. 서원기업이나 두레비즈도 신한서브나 우리피앤에스에서 하는 일을 모두 한다. 좋은 자리도 모두 전직 행원에게 돌아간다. 중앙은행인 한은 행우회가 만든 서원기업은 보험업과 여행업까지 하고 있다. 2012년 봄에는 한은 직원을 상대로 호주와 뉴질랜드, 하와이 여행비용을 깎아주었다. 1년 전 한가위에도 일본여행상품을 특가로 팔았다. 한은법은 직·간접에 상관없이 영리행위를 막고 있다.

"한은 행우회도 하잖아"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다른 시중은행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금융사 건전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검사권을 가진 중앙은행이 한은이다. 더욱이 한은처럼 금융사 검사권을 쥔 금융감독원 노조까지 빌미를 주고 있다. 재취업을 막지 말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공공기관 퇴직자는 일정기간 유관 단체나 기업에서 일할 수 없다. 끊이지 않는 낙하산 논란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금융위원회는 물론 한은이나 금감원도 시중은행에서 잘못하면 시정을 권고해야 한다. 시중은행 행우회가 만든 자회사는 전직 행원에게 좋은 재취업처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뽑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준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는 한다. 그런 자회사는 다시 행우회를 상대로 배당잔치를 열어준다. 헌법소원이나 서원기업을 생각하면 금감원과 한은에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겠다.

위장계열사 논란이 지금껏 없었다니 의아하다. 금융지주법이나 은행법보다는 공정거래법에 답이 있겠다. 공정거래법 기업결합기준은 특정회사를 기업집단에 넣어야 하는지 따질 때 적용한다. 이 기준을 따른다면 행우회 자회사는 모두 금융지주나 은행으로 편입돼야 한다. 사단법인인 행우회를 끼워 넣어 지분관계를 끊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인사를 쥐락펴락하거나 현저한 비율로 상품·용역을 사고팔면 계열사로 본다. 더욱이 행우회 자회사를 상대로 몰아주는 일감에는 더 무거운 세금을 물려야 한다. 공정거래법은 비금융 기업집단에서 발생하는 내부거래(사익편취)에 증여 수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정상적인 경제행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행우회 자회사를 없앨 수는 없다. 그곳에서 한두 사람이 일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회사가 길게는 한 세기 가까이 제자리걸음에만 머물렀다면 문제다. 애초 키울 뜻이 없었을 거다. 도리어 비금융 기업집단은 일감 몰아주기로 잘나가는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4대 재벌에서는 삼성SDS나 현대모비스, SK C&C, LG CNS가 해당한다. 지금은 이런 회사도 깐깐하게 내부거래 규제를 받는다. 행우회 자회사도 금융지주나 은행에 편입돼 예금자 이익에 들어맞게 성장해야 한다. 은행 주인은 자산 대부분을 빌려준 예금자다. 등잔 밑 노릇을 해온 금융위와 금감원부터 청맹과니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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