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성수동에는 ‘헤이그라운드’라는 오피스 공간이 있다. 1층에는 캐주얼 레스토랑과 카페가 위치하고, 그 위로는 소셜벤처기업들이 입주한 8층짜리 건물이다. 사업을 통한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소셜벤처인들은 헤이그라운드에 모여 살기 좋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그들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오피스가 아니었다.
사실 위치부터 이상했다. 헤이그라운드는 녹이 슨 철문으로 둘러싸인 철물점 바로 옆에 잡고 있다. 성수동이라는 동네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겠지만, 두 공간은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관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혁신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혁신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헤이그라운드는 2017년 오픈했다. 오는 9월에는 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1‧2호점을 다 합치면 1300여 명의 소셜벤처인과 비영리단체 구성원을 수용할 수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소셜벤처인들은 이 공간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한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벤처인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도 나눌 수 있고, 때로는 법률‧인사‧재무 등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21일 헤이그라운드에서는 소셜벤처 생태계 활성화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헤이그라운드를 찾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소셜벤처 같은 착한 기업들이 더 많이 생기고,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정부 쪽에서는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이 나왔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임팩트, Impact)을 주는 소셜벤처를 만드는 일이다. 맨땅에서 시작해 사업으로 수익을 내야하고, 지속가능해야 하며, 여기에 사회적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에서 함께 살려 노력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쉬울 리가 없다. 아니, 쉬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벤처가 가장 어려운 지점은 좋은 인력을 놓치는 거다. 급여를 맞춰주더라도 교육과 복지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가 만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 된다. 유능한 직원의 아이가 한 어린이집에 다니면 그 직원은 아이가 만 7세가 될 때까지 퇴사하지 못한다. 엄청난 복지이나, 작은 회사가 어린이집을 만들기는 어렵다. 이런 부분을 제도적으로 (정부가)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다.”(전유택 에누마코리아 대표)
간단했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소셜벤처기업인들도 아이를 걱정 없이 맡길 공간이 필요했다. 성장의 욕구가 누구보다 큰 이들은 교육받을 공간이 필요했다. 개별 벤처기업이 직원들의 복지를 대기업 수준으로 제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셜벤처가 아닌 일반 벤처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헤이그라운드는 ‘괴짜’ 정경선 CIO가 있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제2, 제3의 정경선을 기다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정부가 해결해 주면 어떨까. 모태펀드 등을 통한 벤처 투자금액은 중기부 추산 3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모태펀드를 조성할 자금을 조금만 가져와 벤처기업인들의 아기를 위한 공간, 미혼 직원들을 위한 교육 공간에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벤처기업은 직원들의 복지 걱정을 조금 덜고,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래서 유능한 인재를 회사에 머물게 할 수 있다면 벤처 생태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왕 혁신 기업들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혁신적인 정책도 한 번 쯤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