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정형외과학회가 비의료인 수술실 입회와 관련해 국내 가이드라인 제작의 필요성을 알렸다.
앞서 지난해 5월 부산 모 병원에서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대리수술을 하는 사건이 적발됐다. 당시 해당 영업사원은 수차례 대리수술을 했으며, 그 중 환자 한명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뇌사상태에 빠졌다 결국 숨졌다.
이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의료인 300명을 대상으로 익명의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술실에 의료기기 업체 직원이 들어온 적 있냐는 질문에 49.7%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직원 역할에 대해서는 수술 준비 및 보조가 65.1%, 대리수술이 27.5%였다.
손원용 정형외과학회장은 “지난해 비의료인 수술 참여에 대한 많은 사회적 파장이 보도됐는데, 국내에서는 외국사례와 다르게 비의료인 수술실 입회 관련 정확한 법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비의료인 의료행위는 당연히 금지해야 하나, 환자의 건강을 위해 정확한 의료기기 사용을 위한 보조자 역할로 의료기기 공급자 참여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기 공급자와 의료인에 대해 수술실 입회 관련 기본교육과 해외 가이드라인 등을 소개하고자 오는 18일 의료기기협회와 심포지엄도 개최할 예정”이라며 “향후 국내 가이드라인 제작과 올바른 수술실 입회 환경 조성에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학회의 노력은 그동안 영업사원 대리수술 문제 등과 관련해 비의료인이 수술실에 출입하는 것을 두고 잡음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환자와 보호자 등 입장에서는 비의료인이 수술실에 참석하는 것조차 반대가 클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라면 가이드라인을 두고 이를 허용하자는 설명이다.
실제로 법원 판례를 보면, 2013년 한 병원장이 영업사원에게 마취‧수술을 하도록 지시한 사례에 대해서는 법원이 벌금과 징역형을 선고했으나, 2016년 의료기기 회사 직원이 시력교정술인 라섹수술에 참여한 것에 대해서는 의료행위를 한 것이라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의사 출신 이경권 엘케이 파트너스 변호사는 최근 칼럼을 통해 의료기기 성능이 향상되고 복잡화되면서 필요악으로 의료기기업차가 수술실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며, 이를 합리화할 수 있는 절차를 마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이미 1881년 수술실에 의사가 아닌 사람이 들어와 분만에 참여한 사건에서 산모와 그 남편에게 손해배상을 인정한 판례가 있었다”며 “당시 참여하는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서 환자에게 수술에 참여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과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마련했다”며 “복잡해지는 의료현실에서 의료기기업체 사람이 수술실에 입장한다면 그 절차와 행동범위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환자단체연합회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실제로 어떤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는 입장이어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비의료인, 즉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실에 왜 들어와야 하는지를 모르겠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만약 수술 전 의료기기와 관련해 필요한 교육이 있다면 교육센터 등을 만들어 의사가 교육을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