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황창규 때리기의 본질

2019-03-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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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부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존재와 부재를 증명하는 싸움은 어느쪽이 이길까. 부재, 즉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쪽이 백전백패다. 그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주인의 존재와 부재를 놓고 논쟁이 붙었다 치자. 존재를 주장하는 쪽은 지구에서 가까운 행성 순으로 우주선을 보내면 된다. 그 중 한 군데서만 우주인이 보이면 이긴다. 부재 증명은 다르다. 은하계의 모든 별에 우주선을 쏘아 확인해야 한다. 그 후 다시 다른 수천억계의 은하계에도 로켓을 쏘아야 한다. 그 곳에도 없다면 부재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로마 교황청이 존재하는 건 무신론자들이 신의 부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종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 적이 있는가?

부재 증명의 프레임은 정적 때리기(Bashing)에서도 유용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가장 잘 활용한다.

화웨이 때리기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보안이란 유령을 만들었다. 화웨이가 중국 공산당의 지시로 네트워크 장비에 백도어란 유령을 심었다고 했다. 화웨이가 중국 스파이란 것이다. 일단 프레임을 씌우면 절반은 이긴 셈이다. 시장은 유령의 존재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공포는 실재했다. 유령보다 미국의 입김이 두려웠을 것이다.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화웨이는 유령의 부재를 입증해야 한다.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미국의 의도다.

정치권의 황창규 KT 회장 때리기도 부재 증명 프레임의 일종이다. 2017년 3월 연임한 후 황 회장을 둘러싼 의혹이 꼬리를 문다. 정권이 바뀌면서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시작된 의혹은 정치권 실세 자녀의 부정 입사 이슈로 이어졌다. 최근엔 황 회장이 정치권 안팎의 유력 인사로 구성된 사실상 사적 자문단을 운영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수십억 원의 자문료를 써 황 회장 개인의 자리를 보전하려 했다는 것이다. 

부재를 증명하기 전까지 의혹은 유령이 돼 떠돈다. 부재 증명의 부재가 존재의 반증이 되는 부조리가 생긴다.

부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프레임의 늪에 더욱 빠져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공격자의 의도다. 빠져나오려면 새로운, 즉 존재 증명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화웨이는 처음엔 백도어가 없음을 입증하려고 했다. 영국과 스페인 등에선 공신력 있는 기관에 보안 문제를 검증받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내 전략을 선회했다. 화웨이 장비를 쓰는 것이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정공법을 택했다. 동시에 법적 대응에도 나섰다. 보안 유령을 만든 미국 정부에게 백도어의 존재를 증명하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짰다.

유럽연합(EU)은 5G(세대) 이동통신에서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유령의 존재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레임에 대한 이성의 승리다.

황 회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은 사실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아직 어느 것 하나도 존재를 입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 회장 자신은 물론, KT와 국민 모두가 정치권의 프레임 공격에 놀아나고 있다.

황 회장은 부재 증명에 나설 경우 백전백패다.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입증하라고 해야 한다. 그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황 회장은 물론 각종 의혹에서 언급된 당사자들이 크고작은 상처를 입는다. 부재 증명 프레임 공격은 처음부터 이 것이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같은 당 김성태 의원이 스캔들의 중심 인물로 거론됐다. 공교롭게 의혹제기는 모두 더불어민주당쪽에서 나왔다.

사법의 영역으로 링을 빨리 옮기는 것도 진실에 다가서는 방법이다. 법원은 존재 증명 프레임이 지배한다.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지 않으면 무죄로 간주된다. 심지어 죄를 지었어도 말이다. 보수적인 프레임이 국민을 보호하는 방법이란 것을 사법 시스템은 알기 때문이다. 검찰이 28일 황 회장의 자문단 로비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건 이런 점에서 잘된 일이다. 

법관은 선출되지 않은 유일한 권력이다. 시험을 보고 자질이 입증된 엘리트들이다. 그들에게 사법이란 막강한 권력을 부여한 건 선출된 권력의 실수를 보완하는 장치가 되라는 의미다. 정치권력은 국민 목소리에 갈 지자를 그린다. 사법권은 진실 이외 어떤 소리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각종 의혹들을 공명정대하게 밝히는 게 그들의 임무다. 하려면 빠르고 정확하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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