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로 인간은 신에게서 해방됐다. 신의 섭리에 따라 사는 게 인간의 소명이란 틀이 깨졌다.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는 새로운 기준이 안에서 싹텄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자신만의 가치와 삶을 일치시키려는 자존감이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이후 만물의 존재 가치는 인간의 행복에 따라 결정됐다.
가격은 행복을 재는 저울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하는 쪽으로 만물을 배열했다. 다이슨 헤어드라이어를 50만원 주고 사는 것은 그것이 사는 사람을 그만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선 이 행복감을 효용이라고 한다. 하이마트에 가면 보통 3만원 안팎이면 드라이어 하나를 살 수 있다.
4월 5일 삼성전자가 5G(세대) 휴대폰을 출시한다. 동시에 이동통신 3사가 5G 전파를 송출한다. 세계 최초 5G 이동통신 서비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황창규 KT 회장이 2015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5G 시범전파를 쏘겠다고 했다. 정부는 기세를 몰아 2019년 3월로 상용화 개시 일정을 잡았다.
목표를 못 맞췄다. 삼성전자의 단말기 출시가 늦어졌다. 노키아·에릭슨이 장비 개발을 못 끝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아직 요금 결정을 못했다. 콘텐츠도 충분히 준비가 안 됐다.
정부는 왜 무리수를 뒀을까. 모든 것의 이유는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최초 5G 서비스란 타이틀은 과연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가?
세계 최초란 타이틀은 삼성전자가 미국·인도시장에서 5G 네트워크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 삼성전자는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네트워크 장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인도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에도 나섰다. 가격은 행복에 대한 대가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늘면 인간을 그만큼 행복하게 했다는 의미다.
이동통신 3사의 매출도 늘어날 것이다. 이용자들은 각자의 행복감에 대한 대가로 기꺼이 지불할 만한 요금제를 선택할 것이다. 정부가 통신사의 요금제를 통제하면 시장은 소비자가 무엇에 더 행복해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5G 서비스를 서두르면 행복의 실현을 그만큼 앞당긴다. 정부의 노력은 그래서 전혀 가치가 없지는 않다.
유럽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17년 2월 인공지능(AI)이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AI를 직접 처벌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AI 살인에 대한 세계 최초의 처벌 근거다. AI 스스로가 판단해 살인을 저질렀을 때란 전제조건이 붙는다.
AI의 기술은 실리콘밸리가 훨씬 앞선다. 그들은 딥러닝(학습) 다음 단계인 휴먼레벨 단계의 AI에 대한 연구가 이미 상당히 진행됐다. 휴먼레벨이 바로 EU가 전제한 AI 스스로 판단하는 수준을 말한다.
EU는 왜 기술보다 제도를 먼저 만들었을까. 기술은 곧 매출이다. 기술을 선점하는 쪽이 매출을 늘린다. 우리는 인간의 행복을 가격이란 객관적 기준으로 측정한다. 소득 3만 달러 돌파한 것을 놓고 더 행복해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성과를 나타내는 데 가장 유용하다. 세계 최초의 타이틀에 매진하는 건 곧 성과주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이재용 부회장이, 최태원 회장이 그랬다.
세계 최초의 법안은 가격으로 계량화할 수 없다. 계량화가 안 되면 객관화 할 수 없다. 누구도 그 성과를 알 수 없다. EU는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인간의 행복을 측정한다는 의미다. 자랑이 아니라 자존감을 중시하는 것이다.
AI를 처벌하는 근거를 만들었다는 건 AI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기술 개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술이 인간의 행복을 위협할 수 없도록 시스템부터 짜놓은 것이다. 유럽이 과연 AI 나 5G 관련 기술이 우리보다 뒤질까?
행복에 대한 접근법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유럽은 르네상스가 발원한 지역이다. 그곳엔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았고, 데카르트와 칸트가 발자취를 남겼다.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잴지 보다 깊이 연구했다. 행복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