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리라 폭락에서 시작된 신흥국 통화 불안이 이제 아르헨티나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불안 요소를 앞서 제거한다는 명목 하에 29일(이하 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자금 조기 집행을 요청한 것이 시장의 불안을 자극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전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 달러화 표시 부채 비중이 큰 아르헨티나가 금융 불안에 시달리면서, 터키의 리라화도 다시 급락해 신흥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피 현상이 더 심화할 가능성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남미 3위 규모의 경제국인 아르헨티나 페소는 최근 터키발 신흥국 통화불안 속에서 가장 낙폭을 크게 키웠던 통화다. 부채 대부분이 달러화 자산인 가운데 페소화 가치 하락으로 아르헨티나의 상환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졌으며, 이것이 또 통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28일부터 이틀째 5억 달러에 달하는 달러 매도로 통화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올 들어 외환보유고 중 130억 달러를 시장에 내다팔았으며, 기준금리를 45%까지 올렸다. 그러나 페소화는 올해 달러 대비 50% 가까이 떨어졌으며, 물가는 급등했다. 올해 7월 기준으로 12개월간 물가상승률은 31.2%에 달한다.
경제상황 악화가 가속화되자 마크리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을 당겨서 집행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내년 재정 프로그램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마크리 대통령의 의도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IMF가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은 아르헨티나의 채무상환 능력에 대해 되레 의구심을 키웠다고 FT는 지적했다.
마크리 대통령이 IMF를 재촉한 게 실수라는 비판도 나왔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역대 최대 규모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채권시장에서 퇴출됐다가 2016년에야 간신히 국제금융시장에 복귀했다. 당시 수백만에 달하는 중산층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아르헨티나는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마크리 대통령은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기를 원했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는 내년에 만기 도래하는 249억 달러 규모의 외채를 상환해야 한다. 재정적자는 7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IMF가 요구한 재정축소로 인한 경기하강 우려도 ↑
IMF의 구제금융 수혈에 따른 긴축정책도 경기침체의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400억 달러를 지원받은 데 이어 올해 6월 또 IMF의 돈을 빌리면서 정부의 지출을 줄이기로 약속했다. 정부 주도의 공공사업이 줄줄이 연기되면서 경제가 올해 1% 가까이 수축될 수 있다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밝히기도 했다.
국민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줄면서 마크리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물론이고 수도 등 보조금이 줄어 각 가정의 부담이 크게 늘었으며 물가도 상승했다. 문제는 4분기에는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말에는 전기와 휘발유, 공공요금 등의 인상이 예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내년 마크리 대통령의 재선도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지난 6월에 이어 노동자 단체도 총파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최대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자총연맹(CGT)은 재정감축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다음 달 25일 24시간 파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29일 발표했다. 또 다른 노조들도 IMF의 개입에 반대하기 위한 36시간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경제·정치적으로 불안한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 통화 변동성을 키웠던 터키 리라화의 하락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리라화 가치는 29일 달러화 대비 3% 넘게 떨어지며 지난 13일 저점을 찍은 이후 두 번째로 높은 하락률을 보였다. 이날 터키 통계청은 8월 경기 신뢰 지수가 83.9로 전달 대비 8.3포인트, 약 9%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독일이 터키에 대한 금융 지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도 리라화 급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CNBC는 전했다. 이처럼 터키발 불안이 계속될 경우, 아르헨티나의 불안도 조기 진화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