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국가보안시설인 국회의 출입시스템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대관(對官)팀 직원들이 부실한 출입증 발급제도를 악용해 마음대로 국회를 제집 드나들듯 하고 있다. 이들이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등록, 국회 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고 있다.
22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수당법 등에 따라 국회의원 1명은 보좌관, 비서관, 비서 그리고 인턴 2명까지 총 9명의 유급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여기에 원외로 무급직 2명을 추가할 수 있는데 이들 2명이 입법보조원이다. 현재 300개 의원실 가운데 223개 의원실에서 323명의 입법보조원을 두고 있다.
이는 일반인의 국회 출입과 확연히 다르다. 국회 본관이나 의원회관에 들어가려면 출입문에서 신분증과 함께 방문증을 제출한다. 전화를 통해 의원실이나 국회 사무처 등에서 미리 출입자의 신원을 보장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입법조사원으로 등록되면 아무런 제약 없이 국회를 드나들 수 있다.
입법보조원은 말 그대로 '입법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이라 주로 질의서나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법안 아이템을 발굴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되는데 일부 의원실은 국회 업무 보조라는 취지와 달리 피감기관의 편의를 봐주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의원실 보좌관은 "우리 의원실은 지역구를 관리하는 분으로 등록했지만 입법보조원 출입증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일부 의원실에선 상임위 피감기관, 기업 대관 업무자들에게도 출입증을 준다"면서 "이 기사가 나가면 기업들 여러 곳에서 제발 저려서 전화 오는 경우가 많을 거다. 수차례 문제가 제기돼 왔지만 관행처럼 여전히 이들을 등록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B의원실 비서관 역시 "말 그대로 청탁 소지가 있는 로비스트들에게 편의를 주는 건데 문제가 되지 않겠나. 편의를 제공한 만큼 부탁도 쉽게 할 수 있다"면서 "다들 문제인 걸 알고 있지만 특히 대관 업무자의 경우 보좌진 출신이 많기 때문에 친분을 활용해 '좀 등록해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A의원은 대기업 정책협력담당 부서에서 일하는 아들을 5년간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했다가 문제가 되자 취소했고, B의원은 입법보조원에 아들을 등록해 국회를 출입하면서 공석인 4급 보좌관 행세를 하게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국회 출입증 발급을 담당하는 국회사무처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무처 관계자는 "입법보조원은 의원실에서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인력으로 국회사무처직제 등 인사관계법규 규정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입법보조원 선정은 전적으로 해당 의원실 소관이고, 사무처는 입법보조원의 이름과 전화번호 외에 다른 개인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