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목격자’(감독 조규장)은 바람둥이 석근(영화 ‘바람바람바람’)이나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영화 ‘공작’)과는 달리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가장이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한 뒤 범인에게 위협을 받으며 긴장감 넘치는 추격을 벌이는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배경 속,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는 배우 이성민. 그에게 영화 ‘목격자’에 대한 이야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배우 이성민의 일문일답이다
‘목격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나리오의 첫인상에 대해 말해 달라
- 무섭기도 했지만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다는 느낌이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스릴러 장르라는 생각보다는 드라마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포·스릴러 장르는 선호하지 않는다는데
- 평소 무서운 장면을 전혀 못 보는데 솔직히 ‘목격자’는 안 무서웠다. 내용을 다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오히려 마음이 아픈 장면이 많더라. 피해 여성이 아파트 넘을 넘어 달리며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또 4층 여성이 살해를 당하고 눈 뜬 채로 상훈을 보는데 정말 미안하고 슬펐다. 그런 장면들이 보는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공포보다 슬픔이 더 컸던 것 같다. 뒤풀이 때도 배우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생했다고 말했었다.
상훈이 살인사건을 못 본 척해야 한다는 게 영화의 주된 사건인데, 그 과정에 설득력이 중요했다
- 연기할 때도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상훈이 신고하지 않는 이유가 타당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원망할 거고, 영화에 몰입하지 못할 테니까. 처음 출연을 결정하고 지인들에게 영화를 설명하면 하나 같이 ‘왜 신고를 안 하냐’고 한다. 특히 여자들은 ‘왜 신고를 못 하느냐’며 정의롭게 말하곤 하는데,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 그제야 모두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해주더라. 감독님과도 ‘왜’가 나오는 순간 관객들이 영화를 못 볼 거라고 얘기했었다. 상훈 캐릭터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그 부분을 많이 신경 썼고 또 살인범이 잔인하게 보이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 상훈에게도 설득력이 생길 테니까.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 그렇다. 특히 가족과 맞닥뜨리는 신에서는 극강의 공포를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으니까. 상훈은 가족들과 살인범이 함께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고 나와 가족은 한 블록 거리에 있으니. 마음이 다급하고 두렵더라. 꼼짝을 못 했다. 감독님이 ‘컷’을 외치니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였다. 이런 식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끝까지 끌고 간다면 짜릿하게 보이지 않을까.
매 장면이 압박이었다. 상훈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이 느껴지더라
- 신들이 상황이 명확했다. 리액션 연기가 대부분이었다. 그 상황을 맞닥뜨리고 연기할 때 저도 모르게 예상치 못한 심리 변화, 감정 변화 등이 나왔다. 시나리오를 봤을 땐 ‘대충 이런 것이겠지’ 했는데, 집중하다 보니 충격이 크더라. ‘레디’하고 ‘액션!’ 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때마다 놀라운 현상을 경험했다.
상훈이 느끼는 압박을 관객들도 체험하기 위해서는 태호 역도 중요했는데
- 그렇다. (곽)시양이 캐스팅이 늦었는데 이 역할을 누구로 정할지 고민이 많았다. 몸집이 크고 압도적인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사람을 마주쳤을 때 압도적인 위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시양이가 캐스팅된 뒤, 따로 불러서 ‘살을 찌우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시양이가 주는 독특한 눈빛이 좋더라. 요즘 젊은 친구들과는 다른 매섭고 날카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런 눈이 시양이를 태호 역에 캐스팅하게 된 결정적 요인이라고 본다.
함께 호흡을 맞춰보니 어땠나
- 사실 태호와 상훈이 마주치는 신은 많지 않다. 대부분 화면 속의 시양이를 모니터했다. 태호와 상훈이 마주치고 아파트 복도에서 추격신을 벌일 땐 다리가 후들거리더라. 진짜 무서웠다. 체험해보시면 제 마음을 이해하실 거다. 하하하.
13kg 증량을 위해 손수 짜장 라면을 끓여주었다던데
- 체중을 불리고 있는 중이라 (곽시양이) 많이, 자주 먹더라. 빨리 배고파하고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쉽게 지치고. 딱 아기 같지 않나. 움막에서 쉴 때 짜장라면을 끓여준 적이 있는데 너무 잘 먹어서 상자째로 사다가 때마다 끓여주었다.
김성균이 ‘히든카드’로 출연했었다. 남다른 친분을 자랑하는 김성균과 오랜만에 호흡을 맞췄는데
- 촬영할 때, (김)성균이가 제게 ‘저도 한때 사람 여럿 죽여봤다’며, ‘이제 차세대 살인마에게 역할을 넘기겠다’고 하더라. 하하하. 성균이는 제작사 대표님과 술을 마시고 얼떨결에 출연을 OK 했다고 했다. 역할이 반전이 있는 인물이라 마음에 든다더라. 다만 촬영할 때, 스케줄이 바빠서 같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지 못한 게 아쉽다.
비슷한 시기 ‘공작’이 개봉했다. 연기에 대한 극찬이 주를 이루던데
- 부끄럽다. 과정은 원만하지 않았으나 관객들은 결과물을 보는 거니까. 그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감독님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노력한다. 그들 덕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고 그 덕에 제가 칭찬받는 거로 생각한다. 그 작품 이후 많은 생각과 반성을 했다. 실수하지 않도록 단련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 중인데
- 힘들지 않은데 오히려 작품을 다 찍고 홍보 일정을 소화하는 게 힘들다.
과거 작품들은 다시 보지 않는다고
- 집에서 누군가 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짜증을 낸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 앉아 케이블 채널에서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제발 안 보면 안 되냐’고 한다. 단점들만 계속 보이고 창피한 마음이 든다.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도공이 도자기를 꺼내 깨버리는 마음 같은 거다. 후회 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 제 연기에 만족한다면 이 일을 못 할 것 같다. 다 이뤘으면 이제 낙향해야지. 그렇지 않으니까 계속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