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순 칼럼] 북·미 합의문을 향한 중국의 고민

2018-06-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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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북한이 승자? 새로운 한반도 딜레마 빠진 중국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세기의 만남으로 남을 첫 북·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올해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순조롭게 끝난 것은 한반도가 탈냉전 구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남·북·미 정상회담 성사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북·미 합의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준 숙제
북·미 정상은 싱가포르에서 6·12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필자는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전쟁포로 유해 송환으로 요약되는 공동합의문에 다음과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과 의중이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우선, 4개 항목의 선정과 순서에 있어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최대한 배려했다. 둘째, 미국은 합의조항 순서를 배려해 북한의 경직성을 풀고 '벼랑 끝 전술'을 원천 봉쇄하는 효과를 얻었다. 셋째, 미국은 북한에게 어떤 보상이나 지원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체제 보장이나 경제적 보상을 받으려면 숙제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북·미 관계 정상화’를 합의문의 첫번째 조항으로 선택하여 북한 내부와 주민에 대한 김 위원장의 체면을 배려했다. 김 위원장은 군부와 반대세력 및 북한 주민들에게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크게 앞세울 수 있게 됐다. 미국이 반대 세력을 제압할 선물을 준 셈이다.

둘째, 평화체제 구축 조항은 미래의 목표를 강조한 것으로 이는 남북 모두를 배려한 결과물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방향성을 제시해 한국은 물론 북한 내부의 잠재적 반(反)김정은 세력도 이 흐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한반도 전쟁 조짐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셋째,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의 확고한 목표이자 전제조건인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져야 함도 강조했다. 결국 김 위원장의 체면을 살리고 미래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필수 전제조건이 무엇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이는 북한에게 주는 경고이자 한·미 등 주변국에게는 합의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넷째, ‘유해송환’은 합의문에 대한 미국 내부 반대 세력 무마용으로 궁지에 몰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일종의 ‘물타기’다. 이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한 배려다. 또, 고위급 회담을 포함한 다양한 북·미 혹은 남·북·미 3자회담의 조속한 진행을 요구한 것이다. 

요약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고난도의 전술적 배려를 통해 명확한 전략적 목표를 북한에게 강제하는 협상력을 발휘했다. 벼랑 끝 전술을 봉쇄당한 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가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를 수행해야 한다. 인권 문제를 포함한 전쟁포로 유해 발굴과 송환 등 트럼프가 내준 숙제를 바로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김정은 밀약도 있었을 것으로 예측한다. 트럼프가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승자는 북한이라거나 심지어 전용기를 대여해준 중국과 장소를 제공한 싱가포르라고 하지만 외교의 장에 일방적인 승패는 없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준 숙제를 성실하게 마무리해야 하고,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중국의 '차이나패싱' 우려도 아직 진행형이다. 우리 모두가 트럼프의 트랩에 갇혔다.

◇ 건설적 역할론 거듭 강조하는 중국

이번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 속에서 중국의 반응은 계속 달라졌다.  

우선, 초기 남·북·미 종전선언이 언급되던 시점에서는 중국도 한반도 문제의 이해당사국이므로 반드시 종전선언에 참여해야 한다며 초조함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특히 4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종전선언이 다시 언급되자 차이나패싱을 우려한 중국은 역할론을 반복해 강조했다.

지난 6월 9~10일 산동성 칭다오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개최 당시에는 북·중 3차 정상회담 혹은 북·중·러 3국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초조감을 내보였다.

하지만 결국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와 김 위원장의 칭다오 방문이 여의치 않자 중국은 전용기대여로 나름의 ‘역할찾기’를 시도했다.

김 위원장의 요청에 응했다는 중국은 전용기에서 김 위원장이 내리는 장면을 두고 세가지 의미까지 부여했다.

첫째, 중국역할론이다. 북한이 정상 국가로 가는 길과 한반도 평화 여정으로 향하는 길에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차이나패싱은 없어졌다고 안도했다. 셋째, 북·중 관계가 완전히 과거의 ‘혈맹' 수준을 회복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평창외교로 시작된 차이나패싱에 대한 중국의 두려움이 크다는 사실과 필자가 강조하는 차이나패싱 활용 전술이 유용함을 재확인할 수 있다.

전용기 대여의 의미가 과장되고 북·중관계가 다시 혈맹을 회복해 북한이 '동지'이자 ‘형제’라는 중국의 '러브콜'에 북한이 응할까? 필자는 김 위원장의 두 차례 중국 방문은 물론 이번 전용기 대여도 중국이 먼저 제안했을 것으로 본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세번째 북·중 정상회담을 거절하는 대신 싱가포르가 아닌 중국 전용기를 선택해 중국의 체면을 지켜줬을 것이다.

중국은 차이나패싱에서 벗어나려고 실리를 택했고, 북한은 중국의 약점을 이용했을 뿐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바람과 달리 싱가포르에서 베이징을 들르지 않고 바로 평양으로 돌아갔다. 북·중관계는 아직도 조정의 과정에 있다.

◇ 중국 미군철수 원하고, 북한 친미화 '경계'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미연합훈련 중단 가능성을 반기는 중국은 북·미 관계 정상화 이후 두 가지가 추진돼야 한다고 벌써부터 주장하고 있다. 하나는 전시전작권을 한국에게 돌려주고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군 철수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가져가라는 것이다.

동시에 중국은 두 가지를 우려한다. 첫째, 한반도 문제가 평화국면으로 접어 들어, 미국이 미·일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다. 또, 북·미 관계 정상화가 자칫 북한의 친미화로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결과다. 다시 말해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는 물론 북한의 친미화도 막아야 하는 새로운 '한반도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남북의 3·4차 정상회담에 이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북·미, 남·북·미 간의 다양한 회담이 정례화되면 이는 한반도 탈냉전 구도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 탈냉전은 본격적인 미·중 신(新)냉전구도로의 진입을 의미할 수도 있다.

중국은 차이나패싱 우려에 더해 새로운 한반도 딜레마에 빠졌다.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고 동시에 친미화도 막아야 하는 중국의 '역할'이 건설적일 수 있을까.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남북 또는 남·북·미 갈등을 유발해 '현상 유지'하는 것을 '건설적 역할’로 삼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필자: 김상순 동아시아평화연구원장, 중국 차하얼(察哈尔)학회 고급연구위원

 

[김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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