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항소심에서 형량이 더 늘었다. 같은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특히 재판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도 인정했다.
23일 서울고법 형사3부(조영철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원배제 뿐 아니라 1심에서 무죄로 봤던 공무원 사직강요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김 전 실장은 1심에선 징역 3년형을 받았다.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와 다른 이념 성향을 가졌거나,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는 인사들을 일률적으로 지원배제하는 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의 침해일 뿐 아니라 평등과 차별금지라는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런 식의 차별대우를 대통령과 측근들이 조직적, 집단적으로 한 경우는 국정 전 분야를 통틀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편가르기와 차별, 문화의 자율성, 불편부당의 중립성 원칙을 어기는 위법한 지원배제에 관여한 사람 모두는 그런 결과물에 죄책을 공동으로 져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고 강조하며 조 전 수석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이날 항소심에 영향을 미친 증거는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된 청와대 캐비닛 속 문건들이었다. 이 문건은 청와대 제2부속실, 정무수석실에서 발견된 문서들로 문건에는 김 전 실장이 조 전 수석과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보고를 주고받은 정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들 문건에 적힌 문구에 대해 "그동안 정무수석실에서 좌파 지원배제에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근거"라며 "정무수석실 내의 검토 논의가 조 전 수석의 지시나 승인 없이 이뤄졌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공모 관계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문예계가 좌 편향돼 있다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고, 그에 따라 좌파 지원배제라는 정책 기조가 형성됐다"며 "이에 따라 김기춘이 지원배제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그런 지시가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사실은 대통령이 이를 포괄적으로 승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들과 함께 기소된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문수석에겐 1심처럼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도 각각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