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심상정·김종인 후보는 물론 친기업 성향이라는 홍준표 후보조차 재벌의 전횡을 막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 전원이 어떻게 해서든지 재벌에 손을 대겠다는 의지다.
이에 대해 대기업들은 어느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더라도 기업 활동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 “4대그룹 개혁 통해 경제성장 실현”
가장 날 선 재벌 규제를 주장하는 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다. 그는 “재벌개혁 없이 경제민주화도, 경제성장도 없다”고 수차례 밝혔을 만큼 대기업·재벌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문 후보의 주요 재벌규제 정책은 △상법 개정(전자투표제 의무화, 집중투표제 도입 등) △지주회사 요건 강화(지주사 의무소요 자회사 지분 상향) △금산분리를 통한 재벌·금융 분리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노동자추천이사제 도입 등이다.
특히 10대 재벌 가운데에서도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재벌개혁’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등 개혁 대상기업을 특정해 집중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경영구조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 서면투표, 노동자추천이사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
10대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막고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한편 3세 승계수단으로 악용되는 지주회사 요건도 강화할 계획이다.
◆안철수 “다중대표소송제 통해 재벌 제동”
벤처기업인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문 후보 못지않은 강한 대기업·재벌 정책을 제시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 잘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정 성장론’을 앞세우는 안 후보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수립한 경제정책 공약을 강조하고 있다.
재벌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고 이사회에서 감사 위원을 분리 선출해 독립성을 강화하는 한편,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고발할 수 있도록 허용해 감시를 강화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도 약속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경제민주화 법안 가운데 하나다.
국내 주요 상장사들의 최대 또는 주요주주의 지위에 있는 국민연금은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도록 해 재벌 총수일가를 견제하고 과도한 임원 보수를 규제토록 하며, 공정거래위원회 기능을 강화해 기업 독과점 시 분할 명령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안 후보도 금산분리를 강화할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금융사와 제조사 통합금융 감독 정책 등 문 후보 공약에 더해 그룹 계열사 간 자본적 정성평가시스템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강화하고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의 이사자격을 제한한다.
◆유승민·심상정·김종인 “재벌규제 총력”, 홍준표 “총수 사면 부정적”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유력 대선주자들 가운데 가장 친기업 성향을 가진 인물로 분류된다. '자유시장 경제 옹호'를 기치로 내걸며 과도한 대기업 규제와 금산 분리 정책 등에 대해선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발간한 저서 ‘홍준표가 답하다’를 통해 재벌 총수 사면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또 진보 측 후보들이 주장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공감을 표하는 등 반기업 여론과의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보수와 진보 등으로 이념은 나뉘지만 대기업 정책에 있어서는 ‘개혁’이라는 공감대를 함께하고 있다.
‘경제정의가 살아있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기치로 내건 유 후보는 갑질 금지, 일감몰아주기 금지, 총수일가 비공식 경영관여 금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상법 개정과 법인세 인상 등에도 찬성하는 입장이며, 재벌총수에 일감 몰아주기를 위한 개인회사 설립을 금지하겠다고 천명했다.
심 후보는 재벌 3세의 세습을 금지함으로써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겠다는 뜻을 공약으로 내세워 주목된다. 또한 재벌의 탈법과 불법을 금지할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상법개정, 법인세 인상, 대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 근절 등도 제시했다.
지난 9일 대선캠프를 출범시킨 김종인 무소속 후보도 경제민주화 싱크탱크였던 점을 고려할 때 강력한 대기업, 재벌 개혁 정책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반기업 정서’ 기반 공약에 기업 “어려움 가중될 것” 우려
재계는 선거전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후보별 공약에 대해선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후보별 당선 여부에 따른 영향과 대응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법인세 인상, 세제혜택 철폐 및 감소 등 대기업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분배’ 위주의 복지공약은 기업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이들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될 경우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는 불보듯 뻔하다는 게 기업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모든 대선 후보들이 강력한 대기업 규제를 준비하고 있어 다음 정부에서 시련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면서 “오해의 소지가 많은 대선 공약조차 현재의 분위기에서는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