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택한 반기문, '현실의 벽' 체감…'文 독주' 흔들리나

2017-02-0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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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숙이고 있다.[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그럴 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를 두고 쏟아진 정치권의 반응이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반 전 총장의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경륜과 경험이 국가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당장 반 전 총장의 지지층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대선 주자들의 희비도 엇갈릴 전망이다. 
◆ "반기문, 한계 느꼈나"…불출마 선언, 총체적 '전략 부재'의 결과

이날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 입장을 선언한 반 전 총장은, 별도의 백브리핑 없이 국회를 떠났다.

전날 개헌추진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한 그는 이날 오전부터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정의당 지도부를 차례로 예방했다. 평소대로 정해진 수순의 스케줄을 소화하던 그가 전격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사실상 중앙 정치무대 진입의 한계를 절감한 데 따른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반 전 총장 역시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가족을 비롯해 반 전 총장의 금품 수수 의혹을 시작으로 귀국 후 보여준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 등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점을 토로했다. 여기에 민생 투어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논란과 모호한 비전 등으로 점차 떨어지는 지지율 등이 결단을 내리는 데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순실 사태' 이전까지는 1위를 달렸던 그의 지지율은 귀국 후 3주가 지나자 10%대까지 떨어지며 문 전 대표와 격차를 벌렸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반 전 총장이 대선판에 뛰어들 기본적인 준비조차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오다 보니, 우왕좌왕하다 '정치 낭인'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캠프에 합류키로 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 권영세 전 주중대사 등 주변 인적 구성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정치교체'라는 화두를 내세우면서, 귀국 직후 보여준 민생 행보나 캠프에 합류키로 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결국 구태의 답습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제3지대와의 연대 등을 감안했다면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차분히 키우고 정치적 비전을 명확히 내세웠어야 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박 교수는 "정치적 착륙을 위한 기본적인 전략이 부재했다"면서 "이 때문에 지지자들과의 소통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놀라움을 표하면서도 우선은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보여주신 각오에 비춰보면 뜻밖"이라면서도 "반 전 총장은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외교 분야든, 다른 분야에서 국가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으신 분이니 유엔 사무총장을 하신 경륜으로 국가를 위해서 기여해 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외교 현안이나 여러 어려움에 봉착할 때 반 전 총장이 경력을 살려 특사로 이를 풀어주는 역할을 해주시기리 기대한다"고 말했고,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 역시 "정치를 직접 하지 않으시더라도 평생의 경륜과 경험을 대한민국을 위해 소중하게 써 달라"고 밝혔다. 

한편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고위공직경력 자체가 장점인 시대는 갔다"면서 "반 전 총장의 사퇴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제 미래를 읽고 만들어갈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야 한다"면서 "시대의 요구는 정치의 세대교체로 흘러가고 있다"고 '젊은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부각시켰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뒤 반 전 총장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 대선 구도 요동 불가피…수혜자는 누구

문재인 전 대표와 선두권을 달리던 반 전 총장의 중도 낙마로 향후 대선구도도 요동치게 됐다.

당장 여권에서는 반 전 총장과 경쟁해야 했던 바른정당의 유 의원과 남 지사는 양강 구도를 확립하게 된 상황이다. 다만 반 전 총장을 지지했던 보수층의 표심이 누구를 지지하게 되느냐가 관건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고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이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현재 대안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거론되나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은 밝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낙마로 표심 확보를 위한 보수진영 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각 정당 비주류 인사들의 반문(반문재인)전선 구축, 제3지대의 '스몰텐트' 등도 대선 지형이 흔들릴만한 변수로 꼽힌다. 결국 '문재인 대세론'을 저지하기 위해 유 의원이 제안한 '보수 후보 단일화'가 차츰 명확해질 것이란 예상이다. 

아울러 반 전 총장의 낙마로 문재인 전 대표는 오히려 독주체제 유지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교수는 "새누리당과 문 후보에게 반감을 가진 보수 지지층의 표가 반 전 총장에게 향했었는데, 제3지대가 뭉치게 될 경우 이들 표심을 중도 보수를 내세운 안철수 전 대표가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오히려 국민의당에게 유리해진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문 전 대표로서는 가장 우려하는 구도가 아니겠느냐"라고도 덧붙였다. 

한편 문 전 대표는 이날 대선구도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분명한 것은 정권교체를 하느냐, 정권을 연장하느냐의 구도"라며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는 정권교체에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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