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주호 기자 =독립운동가 이경희 선생의 딸 이단원 씨가 부친의 유품 및 자료 등 717점을 대구시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경희 선생, 긴급하게 협의할 일이 있으니, 6월 5일 오전 10시에 아무도 모르게 나를 찾아 왔으면 하오….”
이경희 선생의 딸 이단원 씨(82·경기 양평 거주)는 이 서신을 포함해 60여 년간 소중하게 간직해온 이경희 선생의 유품과 관련 유물, 자료 등 717점을 최근 대구시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에 권영진 대구시장은 30일 오후 2시 30분 대구시청에서 이단원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단원 씨가 대구시에 기증한 유물은 이경희 선생과 이승만․김구 선생 간 비밀편지 4점 등 독립운동 관련 유물 19점이다.
또한 이경희 선생의 선친인 이병두(李柄斗) 옹이 고종으로부터 받은 서신인 칙유 1점도 기증 유물에 포함돼 있다. 이 서신 내용은 고종이 언제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뜻을 인편으로 보낸 것이다.
이병두 옹은 한의사이자 한학자이며, 경북지역에서 노비해방을 처음으로 단행한 개화기의 선각자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단원 씨가 개인적으로 수집해온 백남준 판화 2점 등 미술품과 도자기류 등 31점, 개인소장 도서․자료 667점 등도 기증 대상에 포함됐다.
이 씨는 부친의 항일운동으로 가세가 기울어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미술품과 도서류 등을 수집해 왔다.
이단원 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것은 마땅히 백성 된 양심으로 한 것이니 독립유공이니 뭐니 자랑 같은 것은 하지 마라’고 하셨다”면서, “아버지가 남기신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 그냥 묻어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들 유물을 대구시에 맡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이 독립운동의 정신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후대에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라 잃은) 못난 나’라는 의미인 지오(池吾)를 호(號)로 삼은 이경희 선생은 1880년 대구 무태에서 태어났다. 한성 기호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와 안동에서 교편을 잡던 중 나라가 망하자 독립운동에 나섰다.
선생은 1922년 항일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해 1923년에 조선총독부 폭파를 계획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5년 광복 후 경북도부지사, 대구부(府) 초대부윤(府尹· 1945∼46),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경북도지부장, 남선경제신문(현 매일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구망우공원에 공적비가 있으며,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금오공대 김일수 교수(한국근대사)는 “기증 유물 중 이경희 선생과 이승만․김구 선생 간 비밀편지 4점은 해방 후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1946년 2월 8일 서울 인사동에서 신탁통치반대운동을 공통분모로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를 통합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가 결성됐다. 이 단체 발족 당시 이승만이 총재, 김구가 부총재를 맡았다.
이 서신 4점은 이 단체가 각 도로 보낸 밀신 가운데 하나로, 당시 긴박하게 흘러가던 정국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로 평가된다.
이단원 씨의 기증품 중 서신 등 주요 유물은 대구근대역사관 상설전시장 독립운동 부스에 전시될 예정이며, 대구근대역사관은 이번 유물 기증을 계기로 내년 상반기에 일제강점기 대구출신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최현묵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은 “대구출신 독립운동가인 이경희 선생의 유물은 지역 독립운동사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며, “오랜 세월 소중하게 간직해 온 유물을 흔쾌히 기증해 주신 이단원 할머니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유물들은 나라사랑에 앞장서 온 선열들의 정신을 배우고, 대구시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