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열린 제67회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영화 <끝까지 간다>(연출 김성훈․주연 이선균 조진웅)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칸에 다녀오자마자 5월29일 국내 관객에게 선보였는데 한 달 새 300만 넘는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6월30일 현재 누적 관객수 312만 6282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 중이다. 상영되는 내내 놀라움의 탄성과 공감의 웃음이 끊이질 않고 영화가 끝나자 환호가 터져 나왔던 프랑스 칸에서의 기분 좋은 전조가 국내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서스펜스와 유머의 동거가 불편하기 쉬운데 균형을 잘 맞췄다고 입에 올리기 민망할 만큼 극찬을 받았어요. 공권력에 대한 비판 의식 강하다는 부분도 주목하더라고요. 사실 사회적 비판은 재미로 넣은 거였어요, 과하면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니까 재미 요소로 살짝 사용했는데 칸에서는 그 부분을 크게 보더라고요.”
칸 나들이, ‘놀이동산’에 다녀온 느낌
이제 두 번째 연출작을 세상에 내놓은 신인감독에게 칸 진출은 독일까, 약일까. 김 감독은 “독이 있다면…, 제가 모르는 것, 모르니까 독일 것”이라면서 “약인 부분은 즐거운 나들이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놀이동산에 다녀온 겁니다. 놀이동산이 제 인생을 바꿀 것도 아니고, 돌아와서 다시 숙제해야죠. (강원도) 강릉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개, 돼지만 보다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가니 기린도 있고 신기하더라고요. 기분전환, 자만으로 흐르면 안 되는 자신감 정도의 좋은 선물 받은 느낌이에요.”
3년 만의 초고속 데뷔, 그리고 쓴맛
지난 2006년 데뷔작 <두 남자의 애정결핍이 미치는 영향>으로 맛 본 흥행실패의 쓴맛을 상기하면 달디 단 나들이다. 김성훈 감독은 2003년, 충무로에 입성한 후 처음 참여한 영화 <오! 해피데이>부터 조감독을 맡았고 2006년에는 두 번째 영화 <그놈은 멋있었다>의 각색까지 했다. 그리고 영화 시작 3년 만인 2006년 그 어렵다는 연출 데뷔를 ‘초고속’으로 했다.
“운이 참 좋았어요, 운을 저의 재능으로 생각했고요. 원작이 있었다지만 3주 만에 초고를 완성했는데 그걸로 투자, 캐스팅이 다 됐어요. 충무로 화랑기의 혜택이었는데 제 능력으로 착각했던 거죠. 영화라는 게 준비할 게 많은데 (겨우) 2고로 촬영에 들어갔고요. 흥행실패는 당연한 결과였어요. 얼마 전에 <두 남자…> 주연 봉태규 씨가 전화를 했더라고요, 이번 영화를 보고요. ‘왜, 첫 번째는 이렇게 못하셨어요?’라고 하는데…. ‘미안해, 용서해 줘’라고 답했습니다.”
“첫 영화 민낯 보는 데 반년 걸려…처음엔 인정 못해”
봉태규가 부러워할 만한 <끝까지 간다>, 일취월장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를 병가지상사로 삼는 일, 결코 쉽지 않다. 냉혹하다 싶을 만큼의 철저한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두 남자…>의 민낯을 보는데 5~6개월은 걸렸던 것 같아요. 2006년 11월에 개봉했는데 다음해 초까지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DVD가 출시되면 진가를 확인받기도 한다더라고요, ‘이번엔 알아볼 거야’ 했는데 또 알아봐 주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로부터 두 달 뒤, 영화와 저의 문제점이 보이면서 창피하기 시작했어요. 과정의 만행과 결과의 초라함이 선명하게 느껴졌어요. 부끄럼을 많이 타는 편인데 고개를 들 수가 없더라고요. 같이 했던 친구들한테 가장 미안했고 앞으로 어떡하지, 난 왜 잘못했을까에 대해 무한히 곱씹었습니다.”
각고의 반성을 통해 김 감독이 내린 결론은 자신부터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재미없지만 관객은 좋아할거야’라든가 ‘나는 좋은데 관객은 싫어하겠지’ 식의 사고가 화를 불렀다는 판단이다. “나부터 좋아해야 그 진심이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얻는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간다>에 임했다.
“더 훌륭한 감독님은 몰라도 저는 저부터 재미있어야 해요. 그런데 ‘나는 뭘 좋아하나’부터도 모르겠더라고요. 그것에 집중해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끝까지 간다>, 최소한 이번 영화에서 나는 그러지(자신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관객이 좋아하리라 생각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감독, 말이 되나요?
칸 진출에 흥행성공, 러브콜이 쇄도할 듯하다.
“예, 요즘 연출 제의 많기는 해요. 잊어진 시절도 있었기에 소외된 것보다 기분 좋아요. 하지만 (이 상황을) 너무 즐겨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던 식으로 흔들리지 않고 해야지요. 영화를 좋아하는 감독, 말이 되나요? 부족한 게 보이면서도 예쁜 마음, 그렇게 제 영화를 좋아하며 영화를 오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걸 단언하지 않고 신중하게 발을 딛는 김성훈 감독에게서는 저무는 노을의 여유보다는 모든 게 새로이 시작되는 세상의 아침, 그 설렘이 느껴졌다. 차기작을 통해 그가 보여 줄 새로운 아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