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국장은 지난 1975년 9급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경영사업과장, 경제정책과장, 첨단산업과장, 투자협력관, 경제산업국장, 경제산업정책실장 등 경제·산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김 국장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워크 홀릭(일 중독)’ 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의 업무에 철두철미 했던 공무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난 1999년 첨단산업과장 재직 시 광산업을 유치하고 이후 광산업이 지역경제의 동력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김 국장은 민선 5기 들어 경제산업정책실장과 투자고용국장을 지내면서 정부예산 확보와 해외투자유치 활동에 전념해왔다.
김 국장은 중국 방문 기간 광저우시 산업 박람회에 참석하고 기가솔라(태양광 셀 모듈) 생산업체 유치활동을 벌이고 1일 귀국을 앞두고 호텔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김 국장의 갑작스런 순직 소식에 광주시청 공무원과 지인들은 애석해했다.
정창균 외국기업투자유치 담당은 “김 국장은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 있을때도 손에서 업무가 떠나는 법이 없었다”며 “산업구조가 취약한 지역발전을 위해 정부 예산 확보와 국내외 기업유치가 필수적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분”이라며 애통해했다.
배정찬 광주연구개발본부 광주기술사업화센터장은 “1999년 광산업 유치 활동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김국장은 자신의 업무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며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선미(54)씨와 2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