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부가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의 일이었다. 음식을 주문한 부부는 이어 와인 리스트를 요청했고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드렸지만, “요즘 행사하는 와인인가 보죠?”라며 즐겨 마시는 와인이 있으니 그 와인을 내 놓으라는 것이었다. 맛으로 보나 향으로 보나 주문한 음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와인을 셀러에서 꺼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한국 와인 문화의 현주소다. 와인 바에서 친구들과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와인 문화가 정착됐지만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문화는 성숙되지 않은 것이다.
또 와인은 갈증해소를 위해 벌컥벌컥 마시는 맥주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원샷으로 마시는 독주와는 달리 잔을 돌려가며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술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와인은 전 세계인들이 즐기며 세계의 주류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더불어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와인 박람회, 세미나와 축제가 열리며 소통과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와인 문화의 길잡이로 소믈리에가 있다. 작게는 손님이 주문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는 것에서 넓게는 세계 와인 시장의 트랜드와 정보를 발 빠르게 손님들에게 전달해주는 것까지 와인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내 소믈리에수는 지난 몇 년간 급증해 요즘 웬만한 레스토랑에는 소믈리에가 한 명쯤은 있다. 얼마 전에 열린 ‘제9회 한국 소믈리에 대회’에도 200여명이 넘는 소믈리에들이 지원했고, 이는 제1회 대회가 열린 1996년보다 7배나 증가한 참여율이었다. 국내 와인 전문가가 속속히 배출되고 있지만 그들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 우리 국민들의 와인 문화 수준은 아직 10여년 전에 머물러 있다.
소믈리에를 활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아 본인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소믈리에와 함께 찾아 가면 되는 것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와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낯설고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와인에 대해 잘 모른다고 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주문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은 무엇인지, 그 동안 마셔봤던 와인 중 어떤 와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와인에 대해 뭐든지 물어보고 대화하다 보면 의사선생님이 환자에게 약을 처방해 주듯이 소믈리에가 셀러에서 와인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 종주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모습은 어떠한가? 프랑스인들은 소믈리에와의 대화를 당연시 여긴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많은 와인 애호가가 초년생 소믈리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끼니때 마다 와인을 즐기며 1인당 57.2리터의 와인을 소비하는 프랑스인에게 와인은 단순 음료를 뛰어넘어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들에게 소믈리에란 와인을 함께 즐기는 동반자이자 가이드이다.
또 그들에게 와인은 음식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물 대신 마시는 음료다. 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중요시 하며 취하기 위해 마시기보다 즐기기 위해 마시다 보니, 와인의 풍미를 최대한 즐길 수 있게 된다. 공유와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와인 문화는 깊고 단단하다.
한국의 와인 문화도 프랑스의 것처럼 성숙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식문화는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나누는 문화가 발달돼 있어 와인 문화가 성숙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성숙한 와인 문화 구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의 와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품질의 와인은 얼마든지 있으니, 소믈리에와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 자신의 취향에 맞고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알아가며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또 와인을 양식에만 곁들여야 한다는 틀도 깨져야 한다. 보르도의 로제는 떡볶이와 잘 어울리며 꼬뜨 뒤 론의 와인은 비빔밥이나 육회와 훌륭한 마리아주를 만들어 낸다. 와인을 한식에 매칭을 해보며 와인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소믈리에 역시 손님과의 대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손님과의 교류를 통해 현 시장의 니즈를 알고 충족시키며 즐기는 와인 문화 구축에 앞장 서야 한다.
황지미 소믈리에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