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브리핑]공정사회의 기초

2010-09-1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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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의 기초는 양심과 도덕이다.

도덕의 철학적 연원에 대해 말할 실력은 못되나, 철학자 칸트가 신(神)으로부터 독립된 '도덕적 인간' 상(像)을 정립하기 위해 산책 시간마저 틀림없이 지켰다는 일화 정도는 안다.

적어도 중세를 벗어나지 못한 당시로서 기독교 세계의 전지전능 유일신의 통제를 벗어난 인간상의 정립이란 학자로서 자리와 명성을 통째 거는 큰 모험이지 않았을까? 칸트는 오직 인간 자신의 순수 이성과 오성에서 비롯된 도덕 원칙이 세상을 아름답게 지탱하는 유일한 원리임을 증명하려 애쓴 것 같다. 신 없이 인간의 순수 이성만으로 도덕적 삶이 가능하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칸트 선생은 틀렸다. (만일 칸트가 인간을 타고난 도덕적 존재라고 선언했다면.) 신으로부터 의식의 독자성을 획득했다는 인간은 도처에서 전쟁과 분란을 일으켰다. 도덕은 커녕 탐욕에 지배된 어두운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 다른 인간을 파괴하고 신을 비웃었다.

자본주의 산업화로 탐욕이 제도화하자 자산과 자본이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됨과 동시에 빈곤과 기아, 질병이 만연하고 급기야 대량 생산된 무기체계를 잘 이용해서 세계 대전과 국지전까지 일으켰다. 전쟁은 산업이 되고 정치는 거대한 이권 비즈니스가 되었으며 민심은 미디어가 아무 때나 입맛대로 튀겨 내다 흘린 팝콘처럼 길바닥에 나뒹구는 지경이 되었다.

좌우 이념 대립은 12세기 십자군 전쟁부터 수 백 년 누대 묵은 종교 전쟁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고, 동서 냉전이 과거의 물결로 흘러가자 종교 원리주의 테러리즘이 세계화했다. 걸프전쟁과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20세기적 패러다임을 전복시킨 빅 이벤트로, 그 이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 전 세계 지식인들이 헷갈려 하고 있다.

머리통을 감싸 쥔 A 그룹은 "너도 옳고 나도 옳다"며 박쥐의 줄타기를 즐기지만 B그룹은 "못된 놈은 뿌리부터 그렇다"며 선과 악의 원리적 선험성을 강조한다. 대다수가 속한 C그룹들은 다수의 길을 좇겠다며 멀찍이 떨어져 눈알만 굴리고 있다.

인간은 본래부터 사악하고 학습과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프로 악당이 되는 존재인가? 천사와 악마, 두 가지 마음 속 캐릭터의 어느 한 쪽이 적시 적소 발현해 생존을 이어가는 존재인가? 불리 할 때 잠시의 타협은 있지만 타고난 선(善)의 의지가 꺾이지 않다가 끝끝내 해피한 엔딩신을 끌어 내는 도덕적 존재인가? 그렇다면 죽음의 기운이 드리운 종이 봉투를 머리에 뒤집어 쓴 중동 포로 앞에서 천진난만 활짝 웃으며 기념 사진 찍는 20대 여 병사의 도덕과 양심은 대체 무엇일까? 설마 악마적 본능으로 그랬을리 없었다고 가정하면 '인간의 도덕, 양심이란 동전 던지기처럼 그저 우연의 산물인 것일까? 그렇다면 선험적 도덕은 물정 모르는 기독교 관념 철학자의 유아적 헛소리 아닌가? 결국 도덕과 양심이란 저널리스트가 경험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그저 미디어 논설에 불과한 것인가?

그러게 하나님을 섬기라고? 선악을 주관하는 신의 품에 안기라고? 그렇다면 도로 원점이 아닌가? 결국 이성 독립운동가 칸트의 캠페인은 3류 가수의 한 때 유행, 시장통 트롯트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 것인가?

도덕이 이렇게 왈가왈부 정의되기 힘든, 상대적이고 불안한 컨셉이라면 '공정사회'는 도덕에 기초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도덕적 기초는 커녕 예서 제서 욕질이나 당하는 불편한 컨셉으로 추락하는 건 아닐까?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공정, 공정' 꽹과리를 울릴수록 '공정사회'가 도덕적 뿌리는 고사하고 철학적 깊이도 얕은 거 같아 불안하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정치적 캠페인인지 효율적 행정 행위인지, 기획자들 마저 헷갈리는 듯 한데 언감생심 근본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기는 힘든 것 같다. 의도는 좋지만 악수와 패착, 한 박자 늦은 수읽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 기우면 좋겠다. 진심으로...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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