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 정책금융·유관기관장 등이 참석한 '금융상황 점검회의'가 열렸다. 지난 3일 밤 선포된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까지 이어지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금융당국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자 마련한 자리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일부터 7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경제·금융 간담회(F4 회의)를 개최하며 시장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무색할 만큼 대통령실 공백 사태는 금융정책의 추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책 연계가 단절되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 관련 법안들이 진전을 보이지 못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금융 안정에 핵심적인 법안들이 계류 중이다. 예금자보호법과 대부업법 개정안,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전자금융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년 초로 예정돼 있던 제4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일정도 이번 혼란 속에서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 금융 혁신을 주도할 신생 은행의 출범이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등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개선안도 역시 일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지난달 금융당국은 ELS 공개 세미나를 개최하고, 제도 개선안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시장 조성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 없이는 당장의 위기만 넘기게 될 뿐이다. 장기적인 신뢰를 구축하지 못할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금융정책의 '셧다운'이 길어질수록 금융시장 전반의 위험 관리에도 균열이 생길 우려가 있다. 지금은 금융당국과 국회가 위기 대응 능력을 극대화해야 할 시점이다. 긴급한 금융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하고, 주요 정책의 추진력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에만 치중하지 말고, 금융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혼란의 정국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금융정책의 방향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금융 시스템의 신뢰를 지키는 것은 단지 경제적 안정만이 아니라 국민 삶의 안정을 위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도 금융당국이 흔들림 없는 실행력으로 미래를 대비하기를 바란다.